| 한자 | 大韓人國民會-地方會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농장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설립 시기/일시 | 1911년 12월 17일 |
|---|---|
| 해체 시기/일시 | 1917년 |
| 최초 설립지 |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농장 |
| 원어 주소 | Plantación Oaxaqueña, Jesus Carranza, Veracruz, México |
| 성격 | 독립운동 단체 |
1911년 12월 17일 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이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농장에 설립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는 멕시코 베라크루스주의 산타 루크레시아(Santa Lucrecia)[현 헤수스 카란사(Jesus Carranza)] 와하케뇨(La Oaxaqueña)[오학기나]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당시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의 주소는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산타 루크레시아 와하케뇨 플랜타시옹[Plantación Oaxaqueña, Santa Lucrecia, Veracruz, México]’이었다. 1930년 산타 루크레시아가 헤수스 카란사로 개칭되었다. 와하케뇨는 헤수스 카란사 시내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들어가는 오지였다.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 계약 노동이 해지되고 3년 후, 한인들은 사탕수수 농장과 제당 공장에서 노동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베라크루스주 산타 루크레시아로 향하였다. 미국인이 운영하던 제당 공장은 베라크루스주 코아트사코알코스강의 상류, 즉 오악사카주와 경계 지역에 있는 와하케뇨에 있었다. 당시 사탕수수 농장과 제당 공장에는 일본인과 중국인이 많았으며, 여기에 한인 노동자들이 들어가 함께 일을 하였다. 여러 농장에서 흩어져 생활하던 한인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를 설립하였으며 회관은 제당 공장에 두었다.
베라크루스주 산타 루크레시아로 이주한 300여 명의 한인은 1911년 12월 17일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를 조직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는 사탕수수 농장과 제당 공장의 한인 노동자 146명을 회원으로 1912년 1월 1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인준을 받았다. 이후 1916년 8월쯤 와하케뇨 농장의 한인들은 교통이 편리한 코아트사코알코스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한인들은 코아트사코알코스강을 따라 뗏목에 가재도구를 싣고 하구까지 내려갔고, 이곳에서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를 운영하였다. 와하케뇨에 남아 있던 한인들 역시 하나둘 유카탄 반도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산타 루크레시아 시내 등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멕시코혁명의 여파로 인하여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는 1917년 해체되었다.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는 1912년 5월에 동포들에게 국어 교육을 통한 민족적 긍지와 조국애를 심기 위해 일신국어학교(日新國語學校)를 설립하고 조국의 역사와 『사민필지(士民必知)』, 산술, 체조, 운동, 연설, 찬송가 등의 교과목을 가르쳤다. 일신국어학교는 교사 신광희와 회원 다수가 타 지역으로 이주하자 잠시 휴교하였고, 학부형과 찬성원들의 노력으로 1913년 5월 26일 다시 문을 열었다. 일신국어학교에서는 야학을 설치하여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공부도 하고, 청년 토론회도 실시하였다.
2024년 기준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가 있던 제당 공장은 잔해만 남았고, 주변은 목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에서는 민족적 긍지와 조국애를 심어 주기 위하여 일신국어학교를 설립하고 2세들을 가르쳤다. 지방회 회원들과 학생들은 함께 군사 훈련도 하고 애국가도 부르며 민족적 긍지와 독립심 고취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비록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는 짧은 기간 존재했지만, 에네켄 농장들과의 계약 노동 이후 새롭게 변화하며 확산해 가는 멕시코 한인 이민 사회의 적극적인 현지 적응 과정과 한인의 정체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