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大韓人國民會-地方會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시대 | 근대/개항기 |
| 설립 시기/일시 | 1909년 5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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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8년 12월 |
| 최초 설립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 |
| 성격 | 독립운동 단체 |
1909년 5월 9일 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이 유카탄주 메리다 지역에 설립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함께 독립운동 지원을 주도한 한인 단체로, 멕시코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였다.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는 에네켄 농장에서 속박을 당하던 1,000여 명의 멕시코 한인들이 조국을 그리워하며 단결과 민족 정체성을 유지,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나아가 조국의 독립을 위한 기초를 다지고 독립운동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1905년(고종 42) 멕시코에 도착했던 한인 이민 노동자들이 4년간의 에네켄 농장 계약 노동이 끝난 1909년(순종 3) 초 16개 농장의 대표를 뽑아 메리다에서 모임을 열었고, 그해 5월 9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를 설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창립회에는 동포 314명이 회원으로 참석하였다. 여기에는 멕시코 한인들을 위무하고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의 종지를 설명하며 메리다에서 지방회를 만들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와 있던 견묵위원인 황사용과 방화중도 자리하였다. 또한 유카탄주 16개 에네켄 농장에서 보낸 총대 등 7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회장 이근영, 부회장 방경일, 총무 및 재무 김윤원, 서기 신광희, 학무원 황명수, 법무원 조병하, 구제원 김제선, 평의원 김구현·최정식·이근하·이국빈·유진태·김대선·김성민·김태진·박선일 등이 회장단으로 선출되었다.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는 1909년 11월 을사늑약 체결 4년을 맞아 일제를 규탄하는 시가 행진을 하였으며, 강제로 조약을 체결한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전단을 메리다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의 조직을 통해 숭무주의가 일어나자 광무 군인 출신들이 모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1910년 11월 17일 숭무학교(崇武學校)를 만들고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다. 1917년 12월에는 도산 안창호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를 방문하자 180여 명의 한인이 환영식에 참석하였다. 1918년 12월 월간 잡지 『단계(檀界)』를 창간하였다.
1919년 조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회원들은 거의 매일 회관에 모여 이후의 운동 방향에 대해 토의하며 독립운동 지원을 계획하였다. 1920년 3·1운동 1주년 기념행사에는 유카탄의 한인 절반이 참석하였다고 전한다.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활동했던 여러 장소와 독립군 양성 기관이었던 숭무학교 등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다. 다행히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건물은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매입하여 복원되었고, 2024년 기준 유카탄 한국이민사박물관으로 개관하여 당시의 자료와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유카탄주 메리다시에서는 1905년 한인들이 멕시코 유카탄에 도착했던 날인 5월 4일을 ‘한국의 날’로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메리다 지역의 한인들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에네켄 농장의 고된 노동에도 굴복하지 않고 한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조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데 힘썼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 기관으로 추진했던 것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