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묵위원

한자 遣墨委員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관직
지역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9년
원어 주소 Mérida, Yucatán, México
정의

1909년 4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서 멕시코의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창립을 위하여 파견한 위원.

개설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서는 멕시코[한자로 묵국(墨國), 묵서가(墨西哥) 등으로 음역하여 불림]의 유카탄주메리다에 지방회를 창립하고자 1909년(순종 3) 황사용(黃思溶)과 방화중(邦化重)을 견묵위원(遣墨委員)으로 파견하였다. 견묵위원들은 1905년(고종 42) 5월 9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를 창립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유카탄 지역 한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여정과 활동 사항

황사용과 방화중은 1909년 4월 3일께 미국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를 출발하였다. 텍사스의 국경 도시 엘파소(El Paso)를 지나 멕시코의 치와와(Chihuahua)를 지난 뒤 그해 4월 6일 멕시코시티(Mexico City)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다시 베라크루스(Veracruz)로 가서 동포 8명을 심방하고, 4월 15일 배를 타고 프로그레소항(Progreso港)에서 내려 유카탄주 메리다(Merida)에 도달하였다. 메리다에 온 두 견묵위원은 멕시코 한인들을 위무하고, 미주 대한인국민회의 종지를 설명하며 지방회 조직에 착수하였다.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는 1909년 5월 9일 창립하였다.

두 견묵위원은 에네켄 농장에서 20세 미만 아이들을 해방시켰고, 계약 노동 수로금(酬勞金) 문제로 4년간 감옥에 갇혀 있던 한인들을 석방시켰다. 그리고 견묵위원들은 일자리가 없는 한인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 구제금을 보낼 것을 요청하였다.

견묵위원 중 한 명인 방화중은 학교에 입학하고자 1909년 6월 16일 멕시코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황사용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각처를 순행하며 회원들을 모집하였다. 기독교 전도사이기도 하였던 황사용은 멕시코 한인들에게 기독교를 전도하다 1910년(순종 4) 1월 11일 메리다를 떠났고, 그 달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담당 직무

견묵위원들은 1909년 5월 9일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에서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창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관련 기록

『신한민보』 1909년 4월 28일 자에 「양위원 소식」이란 이름으로 황사용과 방화중의 활동 사항이 나와 있다. 『신한민보』 1909년 5월 12일 자에는 「견묵위원내함(遣墨委員來函)」이란 기사에 견묵위원과 관련한 내용이 나온다.

의의와 평가

1909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서 파견한 견묵위원들은 멕시코 최초의 한인 단체인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를 창립하는 데 도움을 주며, 한인 사회의 단결과 독립운동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참고문헌
  •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15(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2015)
  • 김도형, 「멕시코 지역 대한인국민회의 조직과 활동」(『국사관논총』107, 국사편찬위원회, 2005)
  • 김도형, 「멕시코, 쿠바 한인들의 독립운동」(『중남미 한인의 역사』, 국사편찬위원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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