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촌

한자 百九村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 플로레스 백구촌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주소 Baek-Ku(Av. Eva Perón-Castañares), Flores, Ciudad Autónoma de Buenos Aires, Argentina
성격 한인 집거지
정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 플로레스에 있는 대표적인 한인 집거지.

개설

백구촌레티로 판자촌[Retiro Slum]비야 솔다티(Villa Sodati)에 이어 초기 아르헨티나 한인 이민자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에 형성한 주요 집거지이다. 백구촌은 편물의 일종인 요코 삯일의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한인들의 대표적인 집거지가 되었다. 백구촌은 2000년대 중반까지 한인들의 생활의 중심 지역이자 소통의 장소로서 교회, 성당, 사찰 등의 종교 시설, 한국학교, 노인회관, 병원, 약국, 식당, 식료품 가게, 여행사, 제과점, 떡집 등이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아베야네다 지역의 의류 상권이 급성장하면서 한인들의 생업 근거지가 아베야네다로 많이 옮겨 갔다.

명칭 유래

백구촌의 정식 명칭은 ‘바리오 리바다비아(Barrio Rivadavia)’이며 ‘109번 종점’이라고도 불렀다. 스페인어에 서툰 한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현지 거리 이름 대신 외우고 발음하기 쉬운 버스 노선을 지역 이름으로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버스 노선인 109번 종점을 동네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다. 1980년대 초 자본을 축적한 한인들이 원래의 109번 종점에서 아베니다 카라보보(AV. Carabobo) 주변과 같은 더 나은 환경의 주거지로 옮겨 가면서 백구촌의 범위가 넓어지며 융성하기 시작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65년 농업 이민을 목적으로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한인들은 열악한 농촌 현실에 실망하고 1년 뒤인 1966년 대부분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하였다. 한인 이주민들은 처음에는 레티로 판자촌비야 솔다티 등 빈민 지역에 거주하였다가 같은 해 10월부터 백구촌으로 옮겨 대규모 한인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백구촌 최초의 입주자는 김명섭, 김형태 부자로 1966년 10월 중순에 백구촌 186호 집을 구매하여 입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의 백구촌은 빈민가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의 철거 정책에 따라 한인 동포들은 109번 종점 지역에서 근처 대로변인 아베니다 코보(AV. Cobo) 인근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백구촌의 범위가 보다 넓어졌다. 1980년대 경제력이 성장한 한인 동포들이 당시 중산층 거주지인 아베니다 카라보보로 옮겨 오면서 백구촌은 아베니다 카라보보와 아베니다 코보를 포함한 바호 플로레스 지역의 한인 거주 지역을 포괄하게 되었다.

현재 백구촌의 중심지는 아베니다 카라보보와 아베니다 에바 페론 카스타냐레스(AV. Eva Peron Castañares) 사이 7블록이다. 전성기에는 한인 280가구가 거주할 정도로 번성하였으나, 2000년대 중반 한인들의 생활 근거지가 아베야네다로 바뀌면서 백구촌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숫자도 크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교회, 성당, 사찰, 한국학교, 식당 등이 여전히 남아 있어 한인촌로서의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백구촌 초기 동포들의 생업

백구촌레티로 판자촌이나 비야 솔다티에서처럼 단지 내에서 무허가 상행위가 일체 금지되었다. 따라서 한인 동포들은 백구촌에 거주하면서 레티로 판자촌에 가서 식품점이나 채소 가게를 하거나 막노동을 하면서 한동안 호구지책을 강구하였다. 한인 동포 다수가 뚜렷한 기술과 영주권이 없었고 언어도 서툴렀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어려워서 백구촌 근처 일본인 세탁소나 식당의 종업원 또는 계산원으로 일하였으나 급여가 너무 적었다. 채소 가게, 알마센[식품점], 구둣방은 관리소 직원들의 간섭이 심해 장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1967년 후반부터 한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성행했던 편물, 요코 삯일 등이 점차 백구촌의 주업종이 되었다.

주변 환경

초기 백구촌에서는 아르헨티나 북서부 지역의 가난한 농촌 주민과 인접국인 파라과이, 볼리비아, 우루과이, 칠레 등지에서 막벌이를 하러 온 이주자들이 섞여 살았다. 백구촌의 동쪽 외곽은 아베니다 카라보보, 남쪽으로는 구라팔리게(Gurapaligue) 길과 이어진 카미노 토레스(Camino Torres) 길[1993년 한국 거리[Avenida Corea]로 명칭이 바뀜]을 경계로 일반 시가지로 분리되어 있다. 백구촌의 서쪽과 북쪽 외곽 지대에는 무질서하게 난립한 거대한 볼리비아인들의 난민촌이 자리 잡았는데, 1975년 전후로 많은 동포가 무장 강도 사건에 시달리면서 한인들은 치안이 안전한 중산층 거주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현황

백구촌의 많은 한인이 아베야네다 거리로 이전하면서 한인 상업 시설 등도 크게 감소하였으나 교회와 성당, 사찰, 한국학교, 식당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아르헨티나 한인이민 50년사』(재아르헨티나 한인회, 2016)
  • Turismo_Buenos Aires(https://turismo.buenosaires.gob.ar/es/turismo-en-barrios/barrio-coreano-circuit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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