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 유형 | 지명/시설 |
| 지역 | 브라질 상파울루주 산투스시 포르토 마쿠쿠 아베니다 콘셀헤이루 로드리게스 알베스 |
| 시대 | 현대/현대 |
| 최초 설립지 | 브라질 상파울루주 산투스시 포르토 마쿠쿠 아베니다 콘셀헤이루 로드리게스 알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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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소재지 | 브라질 상파울루주 산투스시 포르토 마쿠쿠 아베니다 콘셀헤이루 로드리게스 알베스 |
| 원어 항목명 | Porto de Santos |
| 원어 주소 | Av. Conselheiro Rodrigues Alves, S/N, Porto Macuco, Santos, SP, Brasil |
| 성격 | 항구 |
1963년 2월 12일 1차 브라질 한인 집단 영농이민단이 도착한 상파울루주 산투스시에 있는 항구.
산투스항[Porto de Santos]은 1963년 2월 12일 1차 한인 집단 영농이민단이 하선한 곳으로, 한인 공식 이민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에는 주로 설탕과 커피 등의 상품을 포르투갈로 수출하던 항구로, 19세기 후반기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는 유럽으로부터 이민자들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이는 항구로 기능하였다.
16세기 초부터 브라질의 산투스항과 상비센치항(São Vicente港)은 포르투갈과 유럽으로 화물을 운송하던 주요 항구였다. 1870년(고종 7)부터 브라질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영국이 1886년(고종 23) 항구의 인프라, 운영 및 위생 분야에 투자하며 향후 90년 동안 운영할 수 있는 항구 운영에 대한 허가를 받았다. 1890년(고종 27)에는 회사의 상호를 ‘산투스 부두회사[Companhia Docas de Santos, CDS]’로 바꾸고 상파울루주 정부로부터 항만 서비스를 허가받았고, 법적 한도인 260m의 부두 건설 및 특정 저장 공간을 갖춘 ‘조직화된 항구[Sessão portuária organizada]’로서 1892년(고종 29) 대외 무역의 문을 열었다. 이후 산투스항은 브라질의 대표적인 무역항으로 성장하였다.
산투스항은 19세기 초 주로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오는 이민자들의 하선을 위한 브라질의 주요 항구 중 하나였다. 그러나 기반시설과 경제활동 부족으로 이민자들을 신속하게 수용하지 못하자, 이민자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산투스는 ‘죽음의 항구’로도 불렸는데, 이는 불안정한 주거 및 위생 조건 때문에 다양한 열대의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시의 늪지대에서도 전염병이 발생하자 내무장관 비센치 데 카르발류(Vicente de Carvalho)가 사투르니노 데 브리토(Saturnino de Britto)에게 위생 작업을 요청했는데, 이것이 성공하면서 사투르니노 데 브리토는 브라질 위생공학 및 환경공학의 선구자로 일컫는다.
1990년 브라질 정부가 시장자유화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산투스항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컨테이너, 일반 화물, 고체 및 액체 벌크용 특수 터미널의 시설을 현대화하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하였다. 특히 화물 처리 부문에서 연속적으로 기록을 경신하여, 오늘날 세계 최대 항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