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韓人遊園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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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시설 |
| 지역 | 브라질 상파울루주 모지다스크루지스 상파울루주 상베르나르두두캄푸 히아슈 그란지 |
| 시대 | 현대/현대 |
| 원어 주소 | Mogi das Cruzes, SP, Brasil | Riacho Grande, São Bernardo do Campo, SP, Bras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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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격 | 유원지 |
브라질 상파울루주의 모지다스크루지스와 히아슈 그란지에 있던 한인 유원지.
브라질 한인회가 상파울루시에서 약 40㎞ 떨어진 모지다스쿠르지스(Mogi das Cruzes)[면적 약 4만 9586㎡]에 마련한 제1유원지는 자연 경관이 뛰어나 교포 전용 야외 안식처로 사용되었다. 브라질 한인회의 이봉우 회장 재임 시절 마련한 히아슈 그란지(Riacho Grande)의 제2유원지는 울창한 숲속에 있어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브라질 한인회의 무관심, 관리의 어려움 및 재산세와 토지세[Imposto Predial e Territorial Urbano, IPTU] 체납이 겹치면서 모두 매각하였다.
히아슈 그란지에 있던 제2유원지는 브라질 한인회의 21대 회장 이봉우가 주도하여 조성한 곳이다. 이봉우는 한인회장에 재도전하여 당선된 인물로, 첫 번째 낙선한 이후 브라질에 뿌리내리고 사는 다른 민족들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어느 민족이든지 그 사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학교, 은행, 클루브(CLUBE)[클럽, 유원지], 종합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봉우는 두 번째 한인회장 후보 시절 2년 임기 내에 할 수 있는 세 가지 사업[학교, 은행, 클럽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회장에 당선하였다.
그중 클럽의 경우, 부인과 함께 주말이면 한인들이 자주 가서 놀 수 있는 장소를 1년 동안 물색한 결과 히아슈 그란지의 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경관의 별장을 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일본계 골프장 ‘레이크 사이드(Lake Side)’와 가까워 한인들이 자주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한인 가장들이 레이크 사이드에서 골프를 친 이후, 그곳에서 놀고 있던 가족과 합류하기 좋은 위치였다. 그리고 낚시터에서는 뱃놀이도 즐길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한인들이 좋아했던 점은 서정적인 호수의 정경이었다. 이봉우 회장은 그곳에 전시장, 소극장, 연주홀, 댄스홀, 강당, 식당, 오락실, 수영장, 축구장, 농구장, 테니스장 등의 각종 스포츠 시설을 갖춘다면, 한인들이 언제든지 그곳에서 각종 운동 경기, 공연, 결혼식과 피로연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리고 한인들이 일정한 시설 이용비를 내고 사용한다면, 운영 유지비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1989년 3월 10만 달러에 매매 계약서를 쓰고, 네 번에 나누어 지불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네 번에 나누어 대금을 지불하는 동안, 당시 1,000%가 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실제 들어간 투자금은 6만 4000달러나 되었다. 이때 들어간 자금은 한인회 회장단[이봉우 회장, 배태관·강승섭·제갈영철 부회장]이 45%인 2만 9000달러를, 나머지 3만 5000달러는 김상인, 김경삼, 신익균, 양인석, 정순창으로부터 찬조를 받아 충당하였다.
모지다스쿠르지스에 있던 제1유원지의 문제점은 산투스(Santos) 해변에서 산맥을 타고 올라오는 기압이 산맥을 넘지 못해서 비가 자주 내리는 계곡에 자리한다는 것이었다. 즉 한번 물이 계곡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면, 그곳은 홍수로 폐허가 되곤 하였다. 그럼에도 이봉우 회장 재임 시절 선임 회장들이 정성 들여 마련해 놓은 곳이니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곳을 스포츠센터로 전환할 계획을 세웠다. 가장 먼저 그는 모지다스크루지스가 제공한 크레인 등의 대형 장비로 키만 한 하수도관을 묻어 배수로를 만들고, 또한 기존의 작은 인공 호수를 없앴다. 그리고 넓은 마당 자리에 통일각을 지었다.
히아쇼 그란지 유원지의 문제는 토지 소유권에 대한 등기 문제 등으로 한때 어느 개인이 운영하는 영업소로 변모하기도 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브라질 한인회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한 결과였다. 브라질 한인회의 재산 유지는 회장의 역량에 따라서 보물이나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이봉우 회장은 임기 말에 그것을 한인회에 완전히 맡겨야 할지 혹은 별도로 관리를 해야 할지를 놓고 회장단과 고심하였다. 이는 한인회에 맡기면 발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봉우 회장의 계획은 작은 민속촌처럼 만드는 것이었는데, 특히 경회루식 2층 건물을 지어 아래층에는 결혼식이나 문화 행사를 위한 식장, 위층에는 고급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산투스 해변으로 가는 큰 고가도로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라 한국 전통 건축물이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1~2년 만에 될 일도 아니었고 예산도 엄청 들여야 하는 큰 프로젝트로, 일단 한인회에 소유권을 내놓기로 하였다. 그런데 등기가 이봉우와 강승섭의 명의로 되어 있었기에 다음 한인 회장단에 명의를 이전해야 했다. 그런데 브라질 한인회가 곧바로 등기 이전을 하지 않고 또한 관리도 하지 않아, 무단 불법 침입자가 생겨났다. 이는 당시 브라질의 대표적인 사회운동이었던 ‘무토지 농민운동’ 쪽의 무단 점거였다. 이후 13~14년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등기를 이전하지 않으면서 결국 한인 사회의 관심 밖에 놓이게 되었다.
2000년대 초 브라질 한인회가 명분 없는 단체가 되어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하자 이봉우가 다시 수습대책위원장을 맡아 박종기, 안정삼, 권명호를 위원회에 소집하였다. 당시 두 군데 한인 유원지의 각종 세금과 직원 봉급 등 빚만 무려 17만 헤알에 달했기 때문에 이봉우 수습대책위원장은 ‘한인회 살리기 모금’을 시작하였다. 다행히 약 10여만 달러가 모금되어 그동안 밀렸던 IPTU 세금과 다른 부채를 100% 갚았다.
한인 유원지는 관리의 어려움 등을 들어 모두 매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