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스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브라질 상파울루주 상파울루시 브라스구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Brás
원어 주소 Brás, São Paulo, SP, Brasil
성격 한인 집거지
정의

브라질 상파울루주 상파울루시에 있는 한인 경제 중심지.

개설

브라스(Brás)는 상파울루시의 봉헤치루(Bom Retiro)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농장 지역이었다. 20세기와 21세기 초 산업화 1단계가 시작되며 공장과 창고가 많은 중공업 지역으로 변모하였고, 현재는 섬유 제조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한인들에게는 봉헤치루가 서울의 동대문시장, 브라스가 남대문시장처럼 인식되었다. 한인들이 ‘제품’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때만 해도 봉헤치루는 유대인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좀 더 고급 의류를 취급했고, 브라스는 아랍인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값싼 의류를 취급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봉헤치루에는 좀 더 여유 있는 한인이, 브라스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없는 한인이 진출하였다.

2010년대 초부터 브라스에 형성된 ‘새벽시장’이 커지면서, 봉헤치루의 한인 상인들이 브라스로 많이 옮겨 갔다. 2018년 1월 주상파울루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총영사로 부임한 김학유가 가장 먼저 브라스를 방문한 것은 시장 규모 자체가 봉헤치루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명칭 유래

브라스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8세기 후반 세뇨루 봄 헤수스 데 마토지뉴스(Senhor Bom Jesus de Matosinhos) 교회가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자 토지 소유자의 이름인 호세 브라스(José Brás)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다른 하나는 페라로 농장[Chácara do Ferrão]의 소유자인 브라질 출신 아기아르 카스트로(Aguiar Castro)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다.

형성 및 변천

18세기 중반 브라스는 포도주와 리코르[리큐어]를 생산하는 농업 지역이었는데, 19세기 후반부터 맥주와 생필품[양동이와 말안장]을 생산하는 산업 지역으로 바뀌었다.

브라스에는 여러 민족이 시대를 달리하며 진출하였다. 20세기 초반에는 이탈리아인과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이, 1930년대 초반에는 아랍인, 1970년대에는 한인, 1990년대에는 볼리비아인이 진출하였다. 그리고 21세기 초에는 중국인이 진출했는데, 현재도 중국인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11년에 아이티 지진 피해자들을 브라질 정부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부 파라주(Para州)에 정착시켰는데, 그들 역시 이곳 브라스에 집결하였다.

자연환경

브라스는 상파울루시의 96개 지역 중 하나로, 공장과 창고가 많은 중공업 지역으로 섬유 제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현황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의류 시장으로, 새벽 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운영된다. 그런데 이 시장을 장악한 사람들은 볼리비아인과 중국인이다. 특히 중국인은 이 지역의 관리를 맡고 있는 브라질의 마피아 ‘페세세[PCC, Primeiro Comando Capital]‘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상납하며 보호를 받고 있다. 중국인의 브라질 진출은, 브라질 정부의 시장 개방 정책과 함께 시작되었다. 중국이 2009년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브라질의 최대 무역국이 되자, 더 많은 중국인과 더 많은 중국 상품이 이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다.

브라스 새벽시장이 갑작스레 성장한 원인에는 현금 거래가 있다. 즉 세금계산서 없이 현금으로만 거래하는 ‘비공식’ 시장이기 때문이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인들은 이 시장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것은 파산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상황이 달라져서 봉헤치루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인도 브라스로 진출하고 있다. 한인들은 길거리 좌판에서 물건을 파는 다른 민족들[특히 볼리비아, 페루, 파라과이, 중국]과는 달리 ‘복스’를 얻어 장사한다. 새벽시장은 과거의 번화가였던 밀러(R. Miller), 실바 텔레스(R.Silva Teles), 카지미르 데 아브레우(Casemire de Abreu) 거리 대신, 그동안 후미졌던 거리까지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브라스에 거주하는 볼리비아인과 중국인의 수는 공식적으로 각각 30만 명이다. 그런데 이 두 민족의 숫자가 급증한 데에는 브라질과 볼리비아, 브라질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브라질 정부에서 볼리비아의 천연가스를 파이프를 통해 값싸게 공급받는 대신 불법으로 브라질 국경을 넘는 볼리비아인을 눈감아 주었다. 이 불법체류자들이 한인 의류 제조업에서 바느질을 담당한 비율은 80% 이상이다. 하지만 1998년과 2008년 사면령으로 약 20만 명의 불법체류자들이 영주권을 취득하여 오늘날 한인들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였다. 그들의 제품 공급 가격은 한인들이 공급하는 가격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20세기 내내 그 수가 20만 명을 넘지 못하였으나 21세기 들어 중국의 대브라질 투자가 증가하며 오늘날 불법체류자들을 포함한 비공식 통계는 200만 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브라질 정부는 이들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을 눈감아 주고 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브라질 북쪽 끝인 몬치 카부랄(Monte Cabural)에서부터 남쪽 끝인 아호이우 추울(Arroio Chul)까지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들 대부분은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상파울루에서는 여성 의류 제조업과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다.

사실 중국인들은 얼마 전까지 한인들에게 원단이나 부속품을 공급하는 정도의 보조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자기들끼리 카르텔을 만들어 중국으로부터 좋은 모델을 한인들보다 훨씬 싸게 수입하여 한인 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 의류 제조업자들이 사용하는 지퍼나 단추 등의 액세서리를 빈치 싱쿠 데 마르수(Vinte e Cinco de Março) 지역에서 공급해 온 약 700명의 조선족 역시, 중국인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서 오늘날 한인보다 위에 서 있다.

상업 지역이자 공업 지역으로 발전한 브라스에는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데, 이 때문에 두 개의 철도 노선이 운행할 정도로 대중교통이 매우 발달하였다. 메트로 3호선[레드 라인]과 CPTM이 운영하는 통근 철도 3개 노선[청록색 10호선, 산호색 11호선, 사파이어색 12호선] 사용자들은 브라스 기차역에서 환승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개신교회들의 성지[브라질 그리스도교 교회, 전 세계 하나님 권능의 교회의 세계 도시,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 교회의 솔로몬 성전, 하나님의 성회[마두레이라 사역]]가 있을 정도로 브라스는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종교적으로 의미가 큰 지역이다.

참고문헌
  • 최금좌, 「최근 브라질의 경기침체와 한인사회의 도전」(『포르투갈-브라질 연구』15-2, 한국 포르투갈-브라질 학회, 2018. 8. 31.)
  • Silvana Cristina da Silva, 「Os Bairros do Brás e Bom Retiro E a Metrôpole Informacional 1」(『Boletim Goiano de Geografia』35-1, Universidade Federal de Goiás, enero~abril,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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