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韓成傑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2월 18일 |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
| 몰년 시기/일시 | 1938년 5월 11일 |
| 추모 시기/일시 | 2008년 |
| 출생지 | 러시아 연해주 하연추 마을 |
| 활동지 | 러시아 연해주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니콜스크-우스리스크군 인민교육부 주임 |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한인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 재러 한인 독립운동가.
한성걸(韓成傑)[1895~1938]은 1895년 2월 18일 러시아 연해주 하연추 마을에서 태어났다. 1915년 제정 러시아 군대에 징집되어 서부 전선에 투입되었다. 1918년 소위로 제대하여 귀가한 후 사회, 정치 활동에 적극 참가했다. 1919년 11월 반콜챠크 반란에 적극 참여했으나, 봉기가 진압된 후 콜챠크군에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넘겨졌다. 일본군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겪었으나 다른 빨치산 대원들에게 구출되어 풀려났다. 이후 형 한창걸의 빨치산 부대에 입대하여 시베리아 내전이 끝날 때가지 전투에 참가했다. 1926~1928년 수찬 구역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1928년부터 1933년 니콜스크우스리스크 전문학교 주임으로 근무했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는 니콜스크우스리스크군 인민교육부에서 주임으로 근무했다. 한성걸은 1935년 근거 없이 체포되어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고, 풀려난 후 1937년 다시 체포되어 1938년 5월 11일 총살되었다. 한성걸에 대한 복권은 1958년 연해주 지방재판소 간부회에서 이루어졌다. 러시아 이름은 한 이노겐티 엘리세예비치이다.
2008년 대한민국 정부는 한성걸의 공적을 기려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