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朱世竹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러시아 모스크바주 모스크바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
|---|---|
| 수학 시기/일시 | 1921년 |
| 수학 시기/일시 | 1922년 |
| 수학 시기/일시 | 1929년 |
| 수학 시기/일시 | 193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8년 |
| 몰년 시기/일시 | 1953년 |
| 추모 시기/일시 | 2007년 |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 상리 256번지 |
| 거주|이주지 | 러시아 모스크바시 |
| 학교|수학지 | 러시아 모스크바시 |
| 활동지 | 러시아 모스크바시 |
| 묘소 | 러시아 모스크바시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여 |
| 대표 경력 |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회 후보 위원 |
일제 강점기 활동한 대표적인 여성 사회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
주세죽은 1901년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 상리 25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함흥에서 3·1 운동에 참여했다. 1924년 5월 사회주의 여성 단체인 여성동우회 집행위원이 되었고, 1925년 1월에는 경성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5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회 후보 위원에 선출되었다. 1925년 11월 29일 신의주 사건과 관련하여 남편인 박헌영과 함께 체포되었다가, 12월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1926년 6월 다시 체포되었지만 재차 증거 불충분으로 8월에 석방되었고, 1927년 5월 근우회 창립 대회에 참가했다.
1928년 8월 병 보석으로 풀려난 남편 박헌영과 함께 러시아로 망명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11월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주세죽은 1929년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해 1931년 졸업했다. 1932년 1월 박헌영과 함께 중국 상해로 가서 조선공산당 재건 활동에 참여했다. 상해에서 활동하던 중 1933년 남편인 박헌영이 일제에 체포되었고 주세죽은 김단야와 재혼하였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외국인노동자출판부 조선과 교정원으로 일하던 중 김단야가 일제의 밀정 혐의로 체포되었고, 주세죽도 1938년 5월에 체포되어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유배되었다. 1953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였다.
주세죽의 묘소는 러시아 모스크바 단스키 수도원의 납골당에 있다.
2007년 대한민국 정부는 주세죽의 공훈을 기려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