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楊成春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75년 |
|---|---|
| 몰년 시기/일시 | 1910년 2월 16일 |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민회 회장 |
1900년대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재러 한인 독립운동가.
양성춘은 187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여 1910년 2월 16일 사망하였다. 양성춘은 1907년 블라디보스톡 한인민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이때 정순만이 연해주로 건너오자 정순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정순만을 블라디보스토크 민회 총무 겸 서기로 임명했다. 이것은 정순만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해조신문』을 창간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양성춘은 연해주를 무대로 활동하던 의병장들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양성춘은 연해주 의병 지도자인 이범윤, 유인석, 안중근 등을 포박하려고 했으며, 유인석을 체포하여 심하게 고문을 하기도 했다. 이후 1909년 『대동공보』 사원 및 대한인국민회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의 응접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에 관련자로 지목되었다.
201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 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