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沿海州義兵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러시아 |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러일 전쟁 직후인 1906년 초에 간도 관리사 이범윤이 휘하의 충의대를 이끌고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한 것을 계기로 연해주 의병 편성이 촉진되었다. 연해주 의병 편성 과정에서 러일 전쟁에 참전한 후 현직에서 면직되거나 혹은 해산되어 러시아 연추 등지의 남우수리 지역에 머물러 있던 러시아 군인들로부터 무기를 저가로 구입하거나 혹은 지원을 받았다. 1908년 5월 러시아 연추에서 결성된 동의회는 한인의 결속과 환난 구제를 표방하면서 결성되었으나 실질적인 항일 의병을 위한 결사체였으며, 넓은 연해주 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의병 세력을 통합, 운영하기 위한 방편으로 조직되었다. 동의회 결성 초기 총장은 최재형, 부총장은 이범윤이 맡았으며, 회장에 이의종, 부의장에 엄인섭이 선임되었다. 1909년에는 최재형이 직접 회장직을 맡았으며, 안중근과 엄인섭이 평의원으로 실제 업무를 관장하였다. 취지서에는 “철환을 피치 말고 붉은 피로 독립기를 크게 쓰고 동심 동력하여” 무장 항일전에 진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주요 의병장으로는 최재형, 이범윤, 유인석, 이상설, 홍범도, 안중근 등이 있었다.
1908년을 전후로 의병의 항전 의지가 러시아 연해주 전역을 휩쓸었는데 1907년 수청에서 7,000루불의 군자금과 260정의 소총이, 포시예트 지역에서 1만 루불이 군자금으로 모였다. 러시아의 연추와 포시예트를 비롯해 수청, 하마탕,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 추풍 등의 한인 사회는 군수품과 군자금의 주요 조달처였다. 이범진과 이범진의 아들 이위종이 1만 루불을 전달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항일전은 1908년 7월 안중근 의사가 주도한 국내 진입 작전이다. 함경도 경흥, 신아산, 회령의 영산, 경성 등까지 진출하여 한달 반 동안 일제와 항일전을 치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