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역사/근현대 |
|---|---|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 지역 | 일본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905년 5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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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년 시기/일시 | 1977년 4월 16일 |
| 출생지 | 일본 도쿄도 혼고구[현 분쿄구] |
| 원어 항목명 | 山辺健太郎 |
| 성격 | 역사학자 |
| 성별 | 남 |
1900년대 일본 사회주의 운동사와 조선 근대사, 일한 관계사를 연구한 일본의 역사 연구자.
야마베 겐타로는 공산주의 활동가이자 조선 근대사, 일본 사회주의 운동사 연구자이다. 1905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직후 부모의 이혼으로 도쿄를 떠나게 되었고, 서울에서 잠시 동안 생활한 적도 있었다. 고등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 심상(尋常)학교 졸업 후 유명한 서점인 마루젠[丸善] 오사카 지점에서 일하였다. 그동안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사회주의 문헌도 접하게 되었다. 1921년 오사카에서 메이데이에 참가한 후 사회주의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였다. 1929년 4월 16일 일본 공산당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이 가해졌을 때 검거되어 실형 판결을 받고 투옥되었다. 출옥 후에도 운동을 계속하여 1940년 치안유지법으로 검거되었으나 전향하지 않고 1945년 10월까지 도쿄의 예방구금소(予防拘禁所)에 수감되었다. 예방구금소에서 암을 앓고 있던 김천해(金天海)와 알게 되어 김천해를 돌봤다고 스스로 밝혔다.
1945년 10월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의 정치범 석방 조치 시에 풀려 나왔다. 이후 일본 공산당의 전속 활동가로 당사(党史)의 편집과 기관지 『전위(前衛)』의 편집 위원 등을 맡았지만 1958년 이후 당을 떠나 연구에 전념하였다.
야마베 겐타로의 역사 연구 성과는 주로 일본 사회주의 운동사와 조선 근대사, 일한 관계사 연구이다. 조선과 관련된 연구 성과는 이미 1950년대부터 학술지 등에 발표되었고, 1966년 『일한합병소사(日韓併合小史)』와 『일본의 한국합병[日本の韓国併合]』, 1971년 『일본통치하의 조선[日本統治下の朝鮮]』 등을 펴냈다. 연구의 특징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조선 침략 과정, 식민지 지배의 실상 등을 일본의 군인, 정치가 등이 소장하고 있던 사료, 즉 침략을 행한 측의 사료를 토대로 실증적으로 밝혔다는 것이다. 물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조선의 민족적 저항에 대한 사실(史実)도 기술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사, 일한 관계사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적었으며,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에 조력하였다는 등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잘했다는 인식을 가진 일본인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야마베 겐타로의 실증적 역사 연구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950년대부터 젊은 역사학 연구자 및 조선사연구회에 모인 재일 한인 연구자 등과 교류를 가지며 후진 연구자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이러한 교류와 야마베 겐타로의 개성적인 인격은 도오야마 시게키[遠山茂樹]외 편 『야마베 겐타로-회고와 유문[山辺健太郎-回想と遺文]』에 실린 당사자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야마베 겐타로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1966년 『일한합병소사』·『일본의 한국합병』, 1971년 『일본통치하의 조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