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종교/기독교 |
|---|---|
| 유형 | 인물/종교인 |
| 지역 | 미국 한국 |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63년 1월 26일 |
|---|---|
| 활동 시기/일시 | 1886년 |
| 활동 시기/일시 | 189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11월 |
| 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8월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8월 5일 |
| 추모 시기/일시 | 1950년 |
| 추모 시기/일시 | 2014년 |
| 출생지 | 미국 버몬트주 |
| 활동지 | 미국 |
| 활동지 | 한국 |
| 원어 항목명 | Homer Hulbert |
| 성격 | 선교사|목사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고종 비밀 특사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대한제국의 항일운동을 지원한 미국 버몬트주 출신의 감리교 목사이자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1863~1949]는 대한제국에서 감리교 선교사와 목사, 교육자, 항일운동가로 활약하는 등 미국 외 서방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할을 하였던 선교사이다.
1863년 1월 26일 미국에서 태어났다. 1886년 내한하여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쳤다. 1905년 11월, 고종(高宗)의 비밀 특사로 미국을 방문하여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행정부에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고 일본의 보호조약 저지를 호소하였으며, 1906년에는 제2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를 위한 고종의 비밀 특사로 임명되었다. 1907년 7월 초 헤이그에서 이상준과 이준, 이위종 특사를 돕고 그달 10일 ‘평화클럽[Peace Club]’에서 일본의 불법성을 폭로하였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를 만나기 위해 헤이그를 출발하여 미국에 도착하였는데, 그해 8월에 고종이 퇴위하자 호머 헐버트는 일본의 저지로 미국에 남게 되었다.
호머 헐버트는 1907년부터 1945년까지 38년 동안 미국에서 기고와 강연, 회견 등을 열고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1919년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서 ‘한국 독립 호소문[What About Korea]’을 제출하여 일본의 잔학상을 고발하고 한국 독립을 호소하였으며, 1942년에는 ‘한인자유대회[Korean Liberty Conference]’에서 한국인들의 단결과 대일 투쟁을 호소하였다. 1947년 7월에는 미국 신문 『스프링필드 유니언(Springfield Union)』과의 회견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이라고 주장하였고, 한국의 3.1운동은 “세계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국심의 본보기”라고 설파하였다. 1949년 8월 5일 사망하였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라고 한 평소의 소원대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진길 46[합정동 145-8]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묻혔다.
1950년 건국훈장 독립장, 2014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호머 헐버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로 뽑힌 적이 있으며, 안중근이 존경하였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