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韓人宗敎 |
|---|---|
| 분야 | 종교/종교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 지역 | 캐나다 |
| 시대 | 현대/현대 |
캐나다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천주교, 개신교, 불교, 신종교 활동에 대한 개관
캐나다 전역에는 한인 천주교회가 모두 13개[2013년 기준] 있다. 수백 개가 넘는 개신교회에 비하면 숫자상으로 너무 적은 것이 사실이다. 천주교에서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려면 해당 교구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제도상의 특성 때문이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온타리오주에 7개의 성당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고,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앨버타주에 각 2개씩, 그리고 퀘벡주와 매니토바주에 각 1개씩 분포되어 있으나, 캐나다를 구성하고 있는 10개 주 중 과반에 해당하는 5개의 주에는 아직 한인 성당이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각 본당의 설립 과정을 살펴보면 자연 발생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몇몇 신자가 이민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신앙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모아 작은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다음 단계로 ‘공소’가 되었다가 본당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밟아 왔다. 이런 설립 과정으로 볼 때, 한인 성당 없이 자체적으로 작은 신앙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여타 주들에서도 한인 이민자의 수가 점차 늘어나면 본당들이 세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종옥 마태오 신부는 캐나다 한인천주교회 초기사에 빼놓을 수 없는 큰 발자취를 남겼다. 고종옥 마태오 신부가 40여 년간 캐나다에서 살아온 생을 더듬어 보면 한인 천주교회가 캐나다에 정착하고 발전해 온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63년 프랑스 낭시신학대학 졸업과 함께 성 도밍고회[St. Domingo] 소속으로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캐나다로 돌아와 몬트리올 교구에 소속되어 성 루이드프랑스[St. Louis de France] 성당 보좌신부 겸 한인 지도신부로 사목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몬트리올 거주 한인은 70여 명 정도였고 천주교인은 10명 미만이었다. 고종옥 마태오 신부는 종교를 초월하여 동포들의 어려운 문제들을 열심히 도와주는 참다운 사제의 길을 걷다가 1969년 8월 23일 천주교 토론토 성 김안드레아 성당[당시 한맘천주교회] 본당신부로 파견되어 1982년 11월 1일까지 13년 동안 이민 사목에 열정을 바쳤다. 한인 천주교회 본당이 있는 곳은 전국을 통틀어 한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토론토뿐이었고 몬트리올이나 밴쿠버는 천주교인들 간의 친목 모임 등으로 공동체가 태동하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을 때였다. 토론토 본당신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한편, 한인 성당이 태동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곳을 순회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였다.
1970년 런던 한인공동체 당시 토론토 한맘천주교회의 공소로 설정해 오늘의 런던 천주교회를 태동시켰고, 1975년 4월 6일에는 밴쿠버 성 헬렌스 교회[St. Helens Church]에서 첫 한국어 미사를 드림으로써 오늘날 북미주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인 밴쿠버 한인성당이 있게 하였다. 1981년 1월에는 매니토바로 날아가 최초의 한국어 미사를 봉헌하여 매니토바 한인성당 설립의 기운을 불어넣는 등 전국의 한인 성당 설립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983년 11월, 13년간 봉직해 온 토론토 한맘천주교회를 떠나서도 사목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새너제이에서 계속 한인 사목을 하던 중간 시점인 1984년 3월에는 한국 교구청의 요청으로 북한 선교부 프랑스 파리사무실을 열고 책임자로 파견되었다가 북한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전쟁 이후 한인 사제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한 신부가 되기도 하였다.
그 이후 몬트리올 교구로부터 한인 신부의 필요성으로 사목 요청이 있자, 1991년 7월 자신의 첫 사목지인 몬트리올 한인천주교회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마지막까지 사목에 대한 열정을 태우다가 1998년 8월 지병인 당뇨와 고혈압으로 은퇴, 토론토에 있는 요양원에서 2004년 12월 31일 74세로 선종하였다. 캐나다 전역 한인 천주교회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지병으로 임종하는 그날까지 인간미 넘치는 성직자로 살면서 동포 사회로부터 존경 받는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수도자의 본분인 가난하고 청빈한 삶을 평생 살면서, 신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큰 나무의 삶’을 살다 갔다. 『사랑의 지도』, 『이 세상의 이방인』, 『고향에 못 갈지라도』, 『43년 만의 귀향』, 불어 소설 『예수 없는 십자가』 등 자전적 소설과 수필집 23권을 펴냈다. 장례미사는 수천 명의 추모 인파가 모인 가운데 앰브로직 추기경의 집례로 토론토 성 김안드레아 성당에서 엄수되었다. 고인은 최규식 그레고리오 본당신부가 마련해 둔 홀리 크로스 천주교 묘지[Holy Cross Cemetery]에 안장되었다. 묘비에 유언대로 ‘평화적으로 통일 될 조국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그는 철저한 평화주의자였으며 민족주의자였다.
캐나다의 천주교 성당은 앨버타주에 성 안나 한인성당, 성 정하상 한인천주교회, 밴쿠버에 성 김대건 천주교회, 빅토리아 한인천주교회, 온타리오주 해밀턴에 성 유대철 한인천주교회, 키치너에 K-W 한인천주교회, 런던에 성 김대건 한인천주교회, 오타와에 한인순교성인 천주교회, 피터버러에 피터보로 한인순교자 성당, 토론토에 토론토 성 김안드레아 성당, 예수성심 천주교회, 매니토바주 위니펙에 매니토바 한인성당, 퀘벡주 몬트리올에 몬트리올 한인순교자천주교회 등이 있다.
개신교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펼쳐진 캐나다 기독교계의 한국인 선교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태동해서 발전해 왔다. 19세기 말엽 한국에 진출한 캐나다 기독교회는 연합교단의 전신인 캐나다 장로교단으로서 선교 구역이 함경도와 북간도 지역이었다. 함경도를 제외한 남한 지역은 미국의 남장로교단과 감리교단이 관할하였다. 한국인으로서 캐나다 땅을 처음 밟았던 강용흘, 조희렴은 물론이고 문익환 목사의 부친 문재린 목사와 정대위 목사, 이상철 목사 등 캐나다의 한인 개신교계 태두로 불리는 목회자들 대부분이 함경도와 만주 북간도 용정 지역 출신임은 북미 기독교계 선교 정책의 지역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배경으로 최초의 한인 교회들이 창설 과정에서 캐나다 연합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국 땅에서 활약하다 귀국한 캐나다 선교사들이 캐나다에 정착한 한국인 이민자들이 교회를 설립하겠다고 나서자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여기고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1. 1960년대-초대 교회들의 탄생
1960년대 중반의 토론토에는 한인 인구가 고작 100명을 넘는 수준의 작은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었다. 유학생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 커뮤니티는 구성원들의 개신교 기반이 상당히 강해서 한인 교회를 창설하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히 뜨거웠다. 한국인 특유의 열정적인 신앙에 민족문화를 지켜 나갈 수 있는 한인들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욕구가 더해져서 한인 교회 창설이 급선무가 된 것이다. 1967년부터 시작된 한인 개신교회 창설의 시초는 토론토 한인연합교회이다. 1대 목사는 버비지 목사이고 2대 목사는 정대위 목사이다. 1969년 3월부터 3대 목사인 이상철 목사가 부임하여 20년간 시무하였다. 이상철 목사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교인인 문재린 목사는 1974년 4월 토론토 한국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창설해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교민들의 사회참여 신앙을 강조해 한국 민주화에 기여하였다.
이외에 장로교인들을 중심으로 토론토 한인장로교회가 1967년 9월 탄생하였다. 또한 토론토 한인 교회가 1969년 탄생하였다. 1960년대에 세워진 초기 한인 교회들의 경우 한국 기독교장로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목회자들 역시 한국신학대학교와 통합 측 장로교신학대학 졸업자들이 대부분이었다.
2. 1970년대-교민 증가와 개신교회 태동기
1960년대 말기에 토론토의 한인 인구 수백 명을 배경으로 3개의 초대 교회가 창설된 데 이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캐나다 이민 정책의 변화와 더불어 새롭게 유입되는 한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맞물려 한인 개신교계도 양적 팽창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한인 교회들이 블루어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잡았던 것과 달리 1970년대에 유입된 한인 이민자들의 경우 거주 지역의 분포도가 보다 광범위했기 때문에 교회 역시 메트로 토론토 전 지역에 걸쳐 골고루 설립되는 양상을 보였다. 교회의 지역 분포가 다양성을 보이는 추세와 동시에 한인 교회들의 소속 교단 분포 역시 초기의 연합교회와 장로교회 일색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습을 띠게 된 것도 1970년대의 특징이었다. 즉 1970년대부터 감리교회와 성결교회, 오순절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파, 순복음교회, 침례교회 등 한국의 다양한 교단 소속 교회들이 왕성하게 자리 잡는 현상이 뚜렷해지기 시작하였다. 토론토 제일한인장로교회[1972, 고신파], 한인선교교회[1974, 독립교회], 갈보리 한인장로교회[1974], 영락교회[1977, 통합 측], 토론토 순복음교회[1993] 등이 있다.
3. 1980년대-교세 확장과 성장기
1970년대가 교단별 교회 창설로 토론토의 개신교계가 굳건한 기반 위에 도약의 발판을 다진 시기였다면 1980년대는 이 같은 터전을 바탕으로 교회 창립이 봇물을 이루면서 교계의 성장세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시기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유학생 위주의 이민 물결에다가 1970년대 들어 월남 파견 기술자와 파독 광원 간호사 등이 이민의 주류를 이루어 이미 상당한 숫자의 이민 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터에 위니펙 봉제공 등 갖가지 경로를 통해 들어온 토론토의 한인 이민자 수가 1980년대 초에 이미 3만여 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난 것이 큰 밑거름 역할을 하였다. 교회 수의 증가와 맞물려 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부정적 이미지도 없지 않았지만 많은 교회들이 종교 활동뿐만 아니라 이민 생활에 찌든 교민들의 삶에 청량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한인들의 집회장소로 한인회가 운영하는 한인회관이 있기는 하였지만 200개가 넘는 각 교회의 친교실이야말로 토론토 한인들의 희로애락이 숨 쉬는 실질적인 안식처였다. 보수적인 필라델피아 장로교회[1981, 합동 측]와 교회음악 작곡가로 유명한 박재훈 목사의 큰빛장로교회[1984] 등이 1980년대에 창립되었다.
4. 1990년대 이후-교회 대형화와 2세 교회 등장
1980년대에 약간 주춤하던 이민 물결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업 이민, 투자 이민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이민정책에 편승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예전의 빈손 이민이 아닌 돈 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부유한 이민자들로 한인타운이 또다시 붐비기 시작하였다. 이들과 더불어 모국의 경제적 급성장에 따른 유학 붐도 수많은 단기체류 어학연수생과 유학생들을 캐나다로 몰려들게 하였다. 교회들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소위 ‘원주민’이라 불리는 이민 1세대들과 달리 대부분의 신규 이민자들은 새 교회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교회에 소속되는 것을 선호하였다. 1980년대에 비해 1990년대의 개신교회 숫자가 교인 수의 증가에 비해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은 주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규 이민자들의 기존 교회 유입으로 인해 각 교회의 교인 수는 하루가 다르게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교회의 대형화는 필연적이었다. 영락교회와 큰빛교회 등 교인 1,000명을 돌파한 교회가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교인 수의 증가로 말미암아 교회 건물에 대한 수요 역시 급증하게 되자 대부분의 교회가 자체 성전을 구입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존의 교회 건물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오래되고 낡아서 매년 보수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비교적 값이 저렴한 산업 지대의 건물을 구입해 수리하거나 철거한 후 신축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자체 성전 보유라는 목표를 달성한 교회들의 다음 과제는 2세 목회의 활성화였다. 주일학교 수준의 구태의연한 시스템을 탈피하고 2세 목회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교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 교회들의 공통된 특징은 2세 목회자들에게 최대한의 재량권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아직 투자에 따른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띄고 있지 않지만 이민 목회의 올바른 방향 설정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서부장로교회[1987], 본한인장로교회[2004], 부활의 교회[1987], 토론토 염광교회[1983] 등이 창립하거나 새 성전을 건립하며 이름을 개칭하였다. 기타 제칠일안식일교회[1975], 캐나다 신학교[2000] 등이 있다.
현재 『한국일보』 업소부에 등재된 사찰 수는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도 안 되지만 행사에 꼭 나오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예불을 드리는 재가불자들도 무시할 수 없다. 1970년대부터 세워지기 시작한 토론토 일원의 불교 사찰은 1974년 선련사, 1976년 불광사, 1977년 대각사, 1993년 한마음선원, 1999년 정혜사, 2001년 평화사[천태종], 2006년 능인선원, 2008년 법주사 등이 있다. 이외에 1994년 설립된 밴쿠버의 서광사도 있다. 1976년 11월 26일 창립하여 초대 주지인 승려 석광옥의 활발한 포교 활동으로 토론토 사회에 잘 알려진 불광사는 2011년 1월 능인선원에 흡수되었다. 이처럼 약한 교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의 국외 포교를 위한 한인 불자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일부 한인 사찰들은 비 한인 포교에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특히 영어에 능통한 선련사의 승려 삼우와 대각사의 승려 양일은 캐나다 포교에 지대한 공헌을 해 오고 있다.
1. 선련사
토론토 최초의 한국인 불교 사찰은 1974년 설립된 선련사[Zen Buddhist Temple]이다. 주장 승려 삼우는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 어릴 때 출가하여 1960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큰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고 승려 설봉에게 선을 배웠다. 승려 광덕·숭산과 더불어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에서 국제 업무를 담당하였다. 국외 포교에 관심을 갖고 1965년 일본으로 출국, 임제종 평림사와 광덕선사에서 수학한 후 1967년 미국 뉴욕을 거쳐 1968년 2월 몬트리올에 정착, 북미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1년 토론토로 이주해 토론토대학교에서 연구원 자격으로 한국학을 연구하던 중 후두결핵으로 요양원에 입원해서 연구 활동을 중단하였다. 병마를 이기고 몸이 회복된 후 1974년 2월 17일 블루어 스트리트의 한국 식당 코리아하우스에서 한인 불자들과 회동하여 재캐나다 한국불교회를 조직하고 한국 식당 인근의 지하 아파트[마컴 스트리트 378]에 선련사를 창건하고 3월 3일 일요 법회를 시작하였다. 창립 법회에 참석한 한인 신도들은 35명이었다. 초창기 신도의 대부분이 한인들로 시작된 선련사는 승려 삼우가 영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동양 문화에 대한 캐나다인들의 호감이 증가하는 추세와 맞물려 주류 인사들에 대한 포교 활동이 결실을 맺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도 중 비 한인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캐나다 사찰로 자리를 잡았다. 게다가 선련사의 비한인 신도 대부분은 학계와 문화예술계 등 주류사회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산층 지식인들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선련사는 설립 이후 윤고암 종정, 고은 시인 등 한국 불교계의 유명 인사들을 초빙하여 특별 법회를 개최하며 대한불교조계종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나 지금은 정신적 유대관계만 가지며 ‘자혜불교회’라는 독자적 종단을 직접 꾸리고 있다. 불교 포교사를 양성하는 미륵승가대학을 설립해 포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캐나다에 한국 불교와 선 무술, 선 체조 등을 보급하고 있다.
2. 대각사
선련사가 승려 삼우 개인의 역량에 힘입어 창설된 사찰이라면 대각사는 모국의 조계종단에서 한국 불교의 해외 포교 차원에서 직접 승려를 파송해 설립한 케이스이다. 초대 주지인 채인환은 한국의 대표적인 학승으로 동국대학교 교수 출신이다. 일본 유학승의 선구자인 승려 인환은 1976년 5월 토론토 도스 애비뉴(Dawes Avenue) 11에 자리를 잡고 대각사를 창설하였고 1982년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봉직하였다. 1975년 한국 승려로서는 최초로 도쿄대학교에서 문학·철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한 승려 인환은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토론토를 찾아 불교 강연[8195년], 참선 강좌[1995년], 불교교양대학 설립[1998년]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인환이 동국대학교 교수직으로 돌아가고 태응이 주지로 부임하였다. 태응은 한국의 3대 불교 사찰 가운데 하나인 양산 통도사에서 직접 파송하였다. 통도사 주지와 불교TV 방송국 사장을 역임할 정도로 한국 불교계의 중진급 인사인 승려 태응이 1984년 부임함으로써 대각사는 오랜 침묵을 깨고 한인 사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태응은 본격적인 참선 활동과 함께 신도들을 재규합해서 신도 수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나름대로 교세를 일으켜 세우며 고군분투하던 태응은 통도사의 원대 복귀 요청에 따라 1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태응의 후임으로는 1986년 양일이 주지로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한마음선원
1972년 승려 대행이 설립한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은 북미 포교의 전진기지로 설립한 캐나다지원이다. 비구니 승려로 유명한 대행은 한마음선원 지원을 국내에 15개, 국외에 10개 설립하고 각 지원의 일요법회 시 직접 제작한 법문 비디오를 방영할 정도로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졌다. 토론토에 있는 캐나다지원은 1992년 지원장으로 파송된 청각이 1년여의 준비 끝에 1993년 개원하였다. 현재 사찰이 위치한 장소[모빌 드라이브(Mobile drive) 20]는 원래 토론토 한인회관이 있던 곳이며 1996년 한마음선원이 매입하여 10월에 이전하였다. 지원장인 청각은 한마음선원 안양 본원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던 중 1990년 출가하였다. 출가 후 충청북도 음성의 광명선원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의 제자인 혜거로부터 계를 받았다.
일요일 정기법회에 80여 명의 신도가 출석하고 있고 신도의 대부분은 한인이다. 개원 후 20년간 청각이 지원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현재 한인 불교 신도가 가장 많은 사찰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마음선원은 잘 정비된 조직과 각종 출판물을 중심으로 문서 선교가 발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학생들을 위주로 한 청년 집회가 활발하며 항상 숙식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모국에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템플스테이의 원조 격이기도 하다. 넓은 사찰 공간에 잘 꾸며진 정원과 마당이 특징이다. 2012년 5월 22일 한마음선원의 본원장인 대행이 갑작스레 입적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4. 평화사
평화사는 대한불교천태종 소속의 사찰로 2001년 9월 토론토에 있는 이만규 신도의 가정에서 첫 법회를 개최한 후 만 1년 만인 2002년 9월 변춘광을 초대 주지로 임명하고 대한불교천태종 토론토 신도회란 이름으로 정식 창건되었다. 2003년 3월에 리치먼드힐[12085 Yonge Street]에 있는 약 17만 5200㎡의 대지를 사찰 부지로 매입하였다. 2005년 2대 주지로 김세운이 임명된 후 사찰 건립에 박차를 가해 2006년 7월 1일 평화사 개원식과 관음존상 봉불식을 거행하였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1097년(숙종 2) 해동 천태종으로 개창된 천태종은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불교 통폐합 정책으로 인해 조계종, 총남종과 함께 선종으로 통합되었다. 현재의 천태종은 1966년 승려 박상월에 의해 새롭게 개창된 종단이다. 1967년 1월 24일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구인사에서 대한불교천태종이라는 이름으로 창종하고 정부에 등록하면서 공식 발족하였다. 2002년 11월 충남 논산시에 금강대학교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제3대 주지로 개문이 2009년 2월 부임해서 현재에 이른다.
5. 캐나다 불교인회
일반 신도들의 모임인 캐나다 불교인회[Canadian Korean Buddhist Association]는 정기 집회의 활성화와 더불어 불교회관을 구입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어 침체된 토론토의 불교계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 1995년 4월 22일 재가 불교인들의 신앙생활발전을 도모하고 불교에 뜻있는 사람들에게 인연의 구름다리 역할을 하며 회원 상호 간의 친선 도모 및 각종 정보교환을 통해 불교인들의 공동체의식을 조성, 이 땅에 불국토를 이룩한다는 취지 아래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하였다. 초대 회장은 최명수였다. 캐나다 불교인회는 산하에 수선회(修禪會), 관음회, 화음회, 금강회, 연화회 등 5개 지역별 신행 모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요 행사로는 동포 전체를 대상으로 거행되는 정월대보름 잔치를 비롯해 참선 교육, 여름 야유회, 가을 단풍 법회, 한국의 큰스님 초청 법회 등이 있다.
특히 수선회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지원을 받는 재가불자들의 참선단체로 1993년 결성되었다. 고길자가 이끄는 수선회는 1997년 비영리단체로 등록된 후 수차례에 걸쳐 교민 대상 고승 법회 및 참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불교회관에서는 불교 관련 행사는 물론 도서실, 서예 교실, 사랑방, 건강 세미나, 바둑 교실, 요리 교실 등 교민 대상 문화 행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불교인회는 캐나다 한인장학재단에 거액의 장학금을 기부해 온 키치너의 사업가 최등용 거사의 50만 달러 보시금과 그동안 불자들이 모아 놓은 15만 달러를 합친 65만 달러로 2007년 5월 31일 에글리턴 애비뉴 웨스트(Eglinton Avenue West) 1562에 회관을 구입하였다. 개보수 공사를 거쳐 7월에 개관하였다.
토론토 교민 사회의 대표적인 종교로는 기독교와 불교를 들 수 있지만 그 외의 종교들도 소수의 신자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국에서 전도인이 파송되어 포교 활동을 벌이고 있는 종교로는 원불교와 증산도가 있다. 원불교는 대교민 선교활동이 극히 미미한 데 비해 증산도는 단오축제를 비롯한 교민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책자 발간과 보급을 중심으로 활발한 문서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천도교와 더불어 소위 민족종교로 불리는 증산도는 1871년(고종 8) 전라북도 고부에서 출생한 강일순에 의해 창시되었다. 생전에는 훔치교라 일컫다가 강일순의 사후에 강일순의 호가 증산(甑山)인 관계로 증산도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후에 강일순의 부인 고판례를 비롯한 강일순의 많은 제자가 각자 스스로 정통 후계자임을 주장하면서 보천교, 동화교, 태극도, 대순진리회 등 여러 종파로 분리되었다.
토론토에 있는 증산도는 광복 후 대전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포교 활동을 벌인 안운산 종도사의 아들 안경전 종정[현 종도사]이 1981년 『증산도의 진리』라는 서적을 출간하면서 증산도의 교리체계를 확립, 1980년대 말 전국의 주요 대학교에 조직한 증산도우회를 모태로 발족된 단체다. 1998년 상생문화연구소를 설립한 데 이어 2005년에 상생방송국을 개국해 증산도 사상의 정립과 체계화에 주력하고 있다. 대전에 있는 본부도장을 위시해 국내 150여 도장과 캐나다를 비롯한 국외에 20개 도장이 있다.
노스욕 한인타운 인근[처치 애비뉴(Church Avenue) 117]에 있는 토론토 도장은 1995년 개장한 이래 단오축제와 한가위축제 등 각종 한인 행사에 부스를 설치하고 『개벽』과 같은 증산도의 각종 서적들을 보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06년 3월에 부임한 이포정의 인도로 현재 비 한인 30여 명을 포함해 300여 명의 신도를 확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