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특별한 이야기

『영원한 이방인』을 통해서 본 재미 한인의 삶과 정체성

한자 永遠-異邦人-通-在美韓人-正體性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미국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원어 항목명 Native Speaker-Korean American life and identity
정의

1995년 발표된 이창래의 소설 『영원한 이방인』에 형상화된 재미 한인의 삶과 정체성 문제.

개설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은 199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국계 1.5세 이민자인 헨리 파크가 부모님, 백인 아내, 직장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아내 릴리아가 헨리를 ‘불법 외인’, ‘정서적 외인’, ‘스파이’ 등으로 부르며 헨리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은 헨리와 릴리아가 소수 이민자의 어린이들의 이름을 직접 발음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난다. 이민자의 정체성 문제를 한국어와 영어의 사용으로 형상화한 것이나 미국의 주류문화에 편입하고자 하나 이방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이민자로서의 헨리의 정체성을 사설 스파이라는 직업으로 집약하여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헨리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한 한인 가족의 전형적인 문제를 모두 안고 있으며, 헨리의 경계인으로서의 모습은 스파이라는 직업, 백인 아내와의 불화와 별거 등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실제 한국계 이민자, 한국계 미국인, 백인 미국인 등의 전형으로 제시되며, 인물이 겪는 내외적 갈등은 한국계 미국인의 삶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결말에 드러난 이민자 정체성의 문제

『영원한 이방인』에서 이민자의 정체성은 주로 언어 사용으로 형상화된다. 헨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구사하는 한국어나 엉터리 영어와 릴리아가 구사하는 완벽한 영어 그 사이에 이 소설의 주인공 헨리의 언어가 부유하는 방식은 그가 경험하는 혼종적 정체성과 정확히 겹친다. 하지만 백인 아이들의 장난으로 희생된 헨리의 아들 미트는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는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였고, 그와 오히려 아무런 소통의 장애가 없었다. 이는 헨리로 표상화된 한국계 이민자가 지닌 표준 언어 구사에 대한 콤플렉스는 실제 언어의 문제나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에 동화될 수 없다는 주체의 두려움, 또는 주류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있다는 불안과 공포가 낳은 심리적 장애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의 결말이 헨리가 스파이 일을 그만두고 릴리아를 도와 미국에 이제 막 이민 온 어린이들의 영어를 교정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마지막에 그는 “이제 아내는 높낮이와 강약 하나하나에 끝까지 주의를 기울이며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애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나는 우리들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그 모든 어려운 이름을 부르면서 열이 넘는 사랑스러운 그들만의 언어를 아내가 소리 내고 있음을 듣는다.”라고 한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며 헨리에게 동경과 불안을 동시에 주었던 릴리아는 결말에서 새로운 이민자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도록 독려하고 돕는 인물로 바뀐다. 즉 이것은 이민자의 정체성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말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점과 함께 릴리아가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침으로써 이들이 새로운 세계에 정착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편, 각각의 이민자들의 언어와 이름을 존중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스스로 따라함으로써 미국의 주류 집단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것은 헨리가 어린 시절 받아온 언어교정 수업이 내재한 배제와 폭력과 상반되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여러 인종의 아이들 모두 ‘훌륭한 시민’임을 말해 주는 포용의 행위이다.

중심인물의 성격과 전형성

헨리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미국에 이민해서는 게토 지구에서 청과상을 운영해 성공한 한국계 이민자의 전형이다. 미국에 정착하였지만 여전히 한국적 가부장제에 구속된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신보다 약한 다른 이민자들을 착취하면서 억척스러운 상인으로 성공한다. 그리고 스스로 미국의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욕망을 자식인 헨리에게 투사하며 그의 언어가 완벽한 영어가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헨리는 이런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을 이해는 하지만 그를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언어는 미국에서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듯 ‘엉터리 영어’로, 영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거나 아버지보다 더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는 인물들 위에 군림한다.

헨리의 어머니는 영어를 익히지 못해 집안에서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인물로 한국의 가부장제 속에서 철저히 희생되는 인물이다. 미국에서도 가족의 밥상을 차리고 헌신적으로 살림을 살다가 남편의 사업이 성공하여 부촌으로 이사 간 뒤에도 이웃과 가족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시종 예의 바른 태도와 웃음을 잃지 않는다. 미국 사회에 문화적으로 전혀 동화되지 않은 채 가족이 남긴 음식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평생을 남편의 그늘에서 살다 암으로 사망한다. 미국 땅에서 어머니의 언어는 철저한 이방인의 언어였고, 미국 사회에 동화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헨리에게 어머니의 언어는 모어이지만 모국어가 되지 못한다.

헨리의 아내인 릴리아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백인 여성으로 헨리의 동경이자 헨리의 혼종적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인물이다. 아들 미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헨리를 떠나면서 헨리가 누구인지 말해 주는 목록은 정확히 미국인이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중첩된다. 릴리아가 파악한 헨리의 정체성은 B+의 인생을 살았고, 고전음악을 좋아하며, 불법 외인이자 감정적으로 외국인이며 아빠라면 꼼짝 못하는 어린애이자 감상주의자이고 배신자에 스파이다. 릴리아는 헨리뿐 아니라 헨리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하는 ‘아줌마’를 자신의 문화적 언어로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함으로써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간극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릴리아가 소수민족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있고, 헨리에게 완벽한 영어 구사력을 갖춘 ‘영어 아가씨’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설정은 릴리아가 작품에서 하는 역할이 미국 주류사회의 상징이라는 점을 정확히 시사한다.

헨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로 표현되는 한국적 정체성과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고자 하는 강박 사이의 혼종적 정체성을 경험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의 시선에서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성공한 이민자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지만, 학교, 직장, 릴리아와 그녀의 가족 앞에서는 자신의 영어 발음을 의심하고 검열해야 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부유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스파이라는 그의 직업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이민자가 크게 유입된 1970년대 중반에 데니스 호글랜드가 차린 ‘글리머 앤드 컴퍼니’라는 회사에서 그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성공한 소수민족을 사찰하여 WASP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 릴리아는 자신이 정리한 목록을 통해 헨리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이야기해 보라는 요구를 하였지만, 헨리는 자신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보고를 하는 대신 또 다른 정체성으로 가장하여 사찰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과 관계하고 그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민 1.5세대인 헨리가 스스로 정체성을 숨김으로써, 또는 없앰으로써 자신의 일을 완수할 수 있는 스파이로 표현된 것은 실제 한국계 미국인들이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입증하고 세상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헨리의 언어는 완벽에 가까운 영어이지만, ‘낯선 사람들 앞에서 더듬거리던 어머니와 아버지’와 모범적 영어 구사자 릴리아 사이를 불완전하게 부유하는 언어이다.

에밀 루잔은 필리핀계 정신분석학자이자 헨리의 첫 번째 사찰 대상이다. 스파이로서 그의 약점을 찾아내 폭로해야 하지만 정작 루잔은 헨리와의 상담을 통해 헨리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도록 추동하는 역할을 한다. 루잔의 언어는 비정통적이고 비전문적인 영어이지만, 친밀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헨리에게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헨리는 루잔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해 고찰하는 기회를 갖지만, 결국 루잔이 헨리가 넘긴 정보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되면서 자기 정체성의 탐색은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

존 강은 에밀 루잔에 이어 헨리가 사찰하게 되는 두 번째 인물이다. 어린 시절 겪은 한국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모두 잃고 난 뒤, 퇴역하는 2성 장군의 하우스보이로 미국에 밀입국한 그는 미국 고아원에서 새로운 모국어로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의 일부이자 성공한 한국계 이민자가 되었다. 시장을 위협할 정도의 인기 있는 정치가로 성장한 존은 헨리의 아버지와 같이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한 억척스러움을 지녔으면서도, 아버지와 달리 현지 문화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전통적 정체성을 고수하고 한국의 특수 경제공동체인 ‘계’를 통해 소수민족의 정치참여 확대와 이를 통해 미국 내 위상을 강화하고자 하는 정치적 적극성을 지닌 인물이다. 스스로 은폐하고 부정하려고 노력하였던 한국적 정체성이 이 존 강을 통해 미국 주류 정치판에 과감히 등장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목격한 헨리는 존 강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탐색하며, 그를 사찰하는 동안 심각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면서도, 정치가로서 ‘여러분의 언어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중 언어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존 강의 모습은 언제나 ‘영어 발음’에 신경을 쓰며 혼종적인 정체성을 은폐하고 동화주의를 지향하던 헨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존은 이 작품에서 작가가 이민자로서 겪는 혼종적 정체성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인물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역시 미국 주류사회의 희생자가 되고, 스스로도 한국계 매춘부를 교통사고로 죽게 한다거나 참모인 셰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해 오는 등의 부도덕한 면모를 드러내며 헨리의 완벽한 동화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다.

헨리의 아들인 미트는 장난을 빙자한 아이들의 폭력으로 일곱 살 나이에 죽음을 당한다. 릴리아의 말처럼 ‘세상이 그 애를 맞을 준비가 안 되었던’, 즉 미국이란 사회 내 인종차별의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그의 이름 미트가 ‘잡종개’를 뜻하는 ‘mutt’를 연상시키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 정확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주변적 정체성이 집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미트가 백인 동네의 아이들에게 사고이긴 했지만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은 혼종으로의 정체성이 미국의 백인 주류사회에 편입되거나 동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음을 은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헨리는 미트에게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삶’을 주기 위해 한국어 교육을 절대 시키지 않았지만, 릴리아는 미트에게 한국어 교육을 시키기를 원하였다.

이민자들이 경험하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적 한계

존 강은 이미 기득권을 차지한 흑인 시장의 자리를 넘볼 정도의 정치세력을 지니고, 한국식 ‘계’를 통해 그 세를 더 확장하고 있다. 그는 한국계뿐 아니라 중국계, 하이티계, 나이지리아계 미국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존 강을 통해 만들 수 있는 여지를 한국식 ‘계’를 통해 실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식 ‘계’에 의한 정치자금 모금이 라틴계인 에두아르도에 의해 관리되고 그가 헨리와 같은 스파이로 국세청에 불법 모금으로 보고되어 세무조사를 통해 존이 정치적 파멸을 겪게 된다는 점은 소수계 이민자들이 결국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헨리가 그토록 릴리아를 닮기를 소망하였던 미트가 넓적한 동양인의 얼굴을 하필 닮아 태어나는 바람에 백인 동네에서 백인 아이들에 의해 사고로 죽게 되는 사건의 설정도 이민자들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적 한계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고부응, 「이창래의 『원어민』- 비어 있는 기표의 정체성」(『영어영문학』48, 영어영문학회, 2002)
  • 서은경,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민자의 자기 배반의 삶-이창래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를 통해 본 ‘Korean-American’의 생존 방식 탐구」(『우리 어문 연구』58, 우리어문학회, 2017)
  • 전영의,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에 나타난 혼종적 욕망과 언어 권력」(『현대 소설 연구』67, 한국현대소설학회, 2017)
  • 윤준민, 「해외 한인 소설에 나타난 혼종적 정체성의 발현 양상-『영원한 이방인』과 『차이나맨』의 대비를 중심으로」(『현대 소설 연구』80, 한국현대소설학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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