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히 연합회에서 창간한 『태평양시사』는 1919년 3월 조직된 대조선독립단의 기관지가 된다. 처음에는 등사판으로 제작되었다가 1920년 12월 4일에 그 체제를 개량하고 인터타이프(intertype) 식자 기계를 이용하여 1926년 3월까지 주간 신문으로 발행되었다.
구성/내용
『태평양시사』 내용은 주로 한인들의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사회·교육·시사와 논설이었다. 1921년에는 상해 한국 적십자사 서병호가 보낸 내용을 근거로 이승만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에 정정 기사를 요구하는 동지회 정윤필·김봉서 외 35명이 태평양시사에 침입하여 한상여·이상호·허용·정국선·김한경 등을 구타하고 기자재를 파괴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한인 사회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1918년 이승만의 ‘재정 흠축 사건’이 일어나자 박용만은 갈리히 연합회의 기관지로 『태평양시사』를 창간하여 이승만의 『태평양잡지』와 여론 대결을 펼쳤다. 그로 인해 이승만의 지지 세력으로부터 피습[태평양시사 습격 사건]을 받기도 하였으나, 여러 사건 속에서도 박용만이 처음 의도했던 대로 한인들의 독립 정신을 고취하며 조국 독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참고문헌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김창범, 『미주 한인 이민 100년사』(코람데오, 2004)
김도훈, 『박용만-미 대륙의 항일 무장 투쟁론자』(역사공간, 2010)
최기영, 「한말-일제 시기 미주의 한인 언론」(『한국근현대사연구』8, 한국근현대사학회,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