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朝医学 |
|---|---|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전통 의료 |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5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3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3년 |
중국 연변 지역의 한인들 사이에 전해오는 전통 의료 행위의 일체.
이주 한인들은 그 고유한 문화를 기초로 중의학의 이론을 받아들여 결합함으로써 질병을 방지하는 전통 의학 체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이를 '조선족 의학(朝鮮族醫學)'이라고 부르며 때로는 이를 줄여서 '조의학(朝醫學)'이라고도 한다.
조의학의 역사는 대체로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는 1865년을 전후로 1920년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옌볜으로 이주했다. 당시 옌볜의 의학 위생 상황은 매우 취약했다. 그러던 것이 1905년 이후 중국 본토와 조선 각지에서 온 의사와 약재상이 생겨났다. 당시 조선에서 옌볜으로 가져온 서적으로는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 『의방 활투』 등이 있었고 의학을 배우려는 사람은 『의방 활투』부터 공부했다.
두 번째는 1920년에서 1945년 사이의 보급 단계이다. 인구가 날로 늘어나면서 그 의료의 형태도 발전하기 시작했고 1923년에는 옌지, 허룽, 둔화 등 현에 의학 연구회가 생겨나기도 했다. 1938년에는 한의학 강습회도 성립됐다. 이후 각 현에서는 한의 협회가 계속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는 1945년부터 민족 의학이 중시를 받기 시작하여 신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을 일컫는다. 1953년 통계에 따르면 옌볜 지역에서 민족 의학과 제약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만 해도 720명에 달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조선족 의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으로는 김병렬[金炳烈, 1936년생], 최송남[崔松南, 1940년생], 장문선[張文宣, 1931년생] 등이 있다. 이들은 의료 기관 등에서 재직하면서 한인[조선족] 사회의 질병 치료에 평생을 바쳤다.
현재 중국에서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의료 보험 가운데 하나를 가입해야 한다. 이는 도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도시 직공 기본 의료 보험’, 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한 ‘도시 주민 기본 의료 보험’, 농촌 주민이 그 대상인 ‘신형 농촌 합작 의료 보험’ 등이다.
현재 100%의 중국인이 모두 이 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한인[조선족]은 사회 경제적으로 그 역할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조선족이 타 소수 민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더 나은 형편에서 의료 혜택을 받게 될 전망이고, 그동안 매우 취약했던 농촌 지역의 조선족 노인들의 의료 문제도 차츰 개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