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吉城村[琿春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반석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행정촌 |
|---|---|
| 면적 | 경작지 수전 18ha |
| 가구수 | 20호 |
| 인구[남/여] | 인구수 81명, 조선족 76명, 한족 5명 |
| 개설 시기/일시 | 광서년 말기 |
| 변천 시기/일시 | 1945년 8월 |
| 마을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반석향 |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혼춘시(琿春市) 반석향(磐石鄕)에 있는 조선족 마을.
길성촌은 혼춘시 반석향 춘경(春景) 남쪽 2㎞ 지점의 평지에 있다. 광서 연간 말기에 조선길주(吉州)와 성진(城津)[지금의 김책시]에서 이주민들이 소련연해주를 거쳐 이 고장에 와서 마을을 세우고 각자의 고향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길성이라 불렀다. ‘새저리[賽哲里]’라고도 했는데, 새는 조선어의 ‘新’이라는 뜻이고 저리는 러시아어로 마을이란 뜻이어서 조선어와 러시아어를 합쳐 '새 마을'이라는 뜻이다.
일제 통치 시기 1934년에 이 마을 주민들을 한도하자(罕道河子)[지금의 춘경(春景)]의 집단 부락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1945년 8월 일제가 항복한 후 주민들은 원고장으로 돌아와서 길성 지명을 회복하였다. 지금 흩어져 살고 있는 20호 가구의 총 주민 81명 중 5명의 한족을 제외한 76명은 모두 조선족이다. 현재 수전 18ha의 경작지를 갖고 있다.
길성촌은 조선길주(吉州)와 성진(城津)[지금의 김책시] 출신의 이주민들이 소련연해주를 거쳐 들어와 세운 마을로, 각자의 고향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명명하였다.
1985년~1986년 길성촌의 경작지는 수전 18ha이다. 가구수는 20호이고, 인구수는 81명으로 이 중 76명이 조선족, 5명이 한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