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石建坪[圖們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월청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행정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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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적 | 경작지:112㏊, 수전:35㏊ |
| 인구[남/여] | 358명, 한족 1명 |
| 개설 시기/일시 | 광서 원년[1875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921년부터 |
| 마을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월청향 |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도문시(圖們市) 월청향(月晴鄕)에 있는 한인[조선족] 마을.
석건평은 월청향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5㎞ 떨어진 도문강 연안 평탄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112ha의 경작지 중에서 35ha는 수전이고 벼, 콩, 조 등을 재배하는 외에 담배, 사과, 배도 재배한다. 358명 중 오직 한 사람만 한족일 정도의 조선족 마을이다. 석건평은 1875년부터 한반도에서 넘어온 한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1881년에는 그 숫자가 많아졌다. 이에 ‘비교적 일찍 건촌되었다.’라는 의미에서 ‘시건(始建)’이란 명칭이 관습적으로 사용됐다.
1921년부터는 이주해 오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 300여 호에 이르렀다. 당시 이 마을은 양곡 무역 중심지였기에 음식점, 여관, 양식 무역 시장 등이 발달하여 ‘시장 거리’라고도 불렸다. 후에 몇몇 상점주들이 모여서는‘석 씨란 분이 가원을 개발하고 건립했다.’라면서 ‘석건(石建)’이라는 이름을 지은 이래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석건평은 ‘석씨란 분이 가원을 개발하고 건립했다.’ 라고 하여 ‘석건’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석건평은 1875년부터 한반도의 한인들이 이주하여 살기 시작하였다.
석건평의 경작지는 112㏊로, 35㏊는 수전이고 벼, 콩, 조 등뿐 아니라 담배, 사과, 배 등도 재배한다. 인구는 358명으로 한족은 1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