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한자 出版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82년
1882년부터 1887년사이 봉천 조선문 인쇄소
정의

중국 동북 3성에서 조선문으로 된 책·잡지·소책자를 인쇄하여 판매하거나 배포하는 일련의 행위나 사업.

중국 조선족 출판의 개척기

현지 한인 사회에서 근대 출판 역사는 19세기 후반 조선 사람들이 청나라의 봉금령을 무시하고 중국 대륙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다. 1882년부터 1887년까지 스코틀랜드장로회 소속 선교사 죤 로스는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쳤고, 봉천[심양]에서 서상륜,백홍준 등의 도움을 받아 선교사 매킨타이어와 함께 성경을 조선어로 번역 하였다.

이들은 1882년 인쇄기를 구입하고 조선문 활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조선문 활자이다. 그리고 봉천 조선문 인쇄소에서 『예수 성교 누가 복음서』를 인쇄 하였는데 이것이 첫 조선문 출판물이다.

조선 민족의 첫 출판 활동인으로는 강소성 남통(南通)의 한묵림서국[韓墨林書局]에서 편집 사업을 한 김택영(金澤榮)이다. 그는 1850년 한국 경기도 자남산에서 태어나 벼슬길에 올랐던 사람으로서 1905년 굴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 해 9월 중국상해로 망명하였다. 그는 남통한묵림서국에서 22년간 편집, 출판 사업을 펼치면서 30여부에 달하는 자신의 저작을 정리, 출판하였다. 그는 탁월한 조선의 문호이며 중국 국적을 가진 첫 한인 편집인이기도 하였다.

1919년 조선의 망명 애국 지사들이 상해에서 상해 삼일인서관(上海3·1印書館)이라는 인쇄소를 세웠다. 여기서『독립 신문』등 여러 가지 출판물을 찍어내어 항일 민족 독립 사상을 홍보하였다. 그 때 출판된 서적 중에는 북경 주재 상해『대륙지』기자 나타니엘 페퍼의 『한국 독립운동 진상[김여재역 1920년]』, 이광수의 『독립운동 논설집[1920년]』, 김병조의 『한국 독립운동 약사[1921년]』, 조선의 저명한 어학자 김두봉의『깁 더 조선말본[1924년]』등이 있다.

지난 세기 20년대 만주에서 출판된 조선문 서적들로는 1923년 이동휘(李東輝), 계봉우(桂奉禹) 등 애국 지사들이 국자가[연길] 광성(光成) 학교에서 교학용으로 편찬한 조선어, 역사, 지리, 수신, 창가 등 교과서들이다.

1920년대부터 광복 전까지는 일제의 우민정책과 민족동화정책으로 말미암아 조선문 서적 출판이 어려웠다. 교과서로는『조선 최신 지리[용정 청구활판 인쇄소, 1923년]』이 있고 30년대 항일 유격구 한인 학교들에서 등사 출판한 『조선어』,『창가』등이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광복 직후의 중국 조선족 출판

중국 한인[조선족] 사회에서 현대 출판 사업은 1945년 8월 광복되면서 새로운 발전기를 맞이하였다고 할수 있다. 당시 연변을 중심으로 한 목단강, 하얼빈, 길림, 장춘, 통화, 심양, 북경 등지에서 수십종에 달하는 각종 조선문 잡지와 출판물들이 발간되어 출판 발행 되었다. 이런 잡지와 출판물 가운데는 종합적 출판물이 있는가하면 정치성, 문예성 혹은 공업, 농업, 교육, 사회, 의료 등 각종의 전문 출판물로 구성 되었다.

1945년 11월 길동 활엽 문헌 출판사[吉東活葉文獻出版社]가 『위대한 10월 사회주의 혁명 28주년』이란 제목으로 소책자를 출판하였다. 1946년에는 중소[중국·소련]협회 출판사, 연변문화사, 청구재 출판사, 연변 출판사, 길동 출판사 등의 출판사에서, 1947년에는 용정 중학 출판부, 청년 문고 출판사, 민주 출판사, 대중 출판사 등의 출판 기관에서 조선문 서적을 대량 출판 발행하였다.

1945년 11월에 창간된 연변 민보사, 1946년 5월에 창간된 길동 일보사, 1946년 9월에 창간된 인민 일보사, 1947년 3월에 창간된 길림 일보사, 1948년 4월에 창간된 연변일보사, 1949년 4월에 창간된 동북 조선 인민보사 등 신문 보도 단위들도 신문을 출간하는 외에 조선문 서적도 출판하였다.

당시 발간된 주요한 정치성 출판물로는 『사회 과학 강좌』,『연변 통신』,『시 사순보』,『민족 공작 통신』,『농민의 기쁨』등이 있다. 『사회 과학 강좌』는 1945년말 목단강시에서 출판한 비정기 간행물이고 『연변 통신』은 연길시에서 출판 발행되었다.『시사 순보』는 1947년 연길시에서 창간되었는데 연변문화사가 편집 출판하였다.

『민족 공작 통신』은 1947년 7월 하얼빈시에서 출판·발행 되었다. 이외에도 『신건설』,『불꽃』,『신청년』,『해방』,『건설』,『대중』,『연변 문화』,『문화』등 수많은 정치 시사성 종합지, 전문성 잡지와 책자들이 창간되었는데, 이들 서적은 주로 동북 조선 인민보사, 연변교육출판사 등 전문적인 출판 기관에서 출판되었다.

조선족 출판의 신속 발전과 좌절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한인[조선족] 거주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분야는 빠르게 변화하였다. 이로부터 10년간 조선문 출판도 전성기를 맞으면서 각종 출판물이 쏟아져 나왔다. 1951년 6월 『연변 문예』가 창간되었다. 이 잡지는 연변 문학 예술 연합회 기관지로서 1956년까지 총 35기가 출판·발행되었다. 1956년 11월 28일 중국 작가 협회 연변 분회 기관지로 『연변 문예』제호를 『아리랑』으로 바꾸어 출판하였다. 『아리랑』은 총 23기가 출판되었다. 1957년 4월 『장백산』이 연길에서 창간 되었는데 제5호부터 연변 문학 예술 연합회의 기관지가 되었다. 1953년 9월 『인민 화보』조선문 판이 북경에서 발간되어 외국문 출판사에서 출판했고, 1955년 2월 『민족 화보』조선문 판이 북경에서 발간되어 민족 출판사에서 출판하였다.

조선문 전문지들의 창간, 출판에도 큰 발전이 있었다. 공화국 창건 이전 해방전쟁 시기에는 전문지가 『교육 통신』한 종류였지만 해방 후에는 『교육 통신』외에도 『소학 교육』,『연변 위생』, 『학습과 연구』, 『대중 과학』, 『연변 일보 통신』등 전문성 출판물들이 출판 발행되었다. 정치성 출판물로는 『신농촌』,『지부생활』, 『당의 건설』, 『학습』등이 출판되었고 종합지로는 『연변통신』,『소년아동』, 『연변청년』등이 출판되었다.

1958년에 이르러 한인[조선족] 집단 거주 지역에서는 각 지역 마다 수십 종의 잡지와 출판물들이 간행되었다. 『기적』,『장흥』,『천평벌』,『구수하벌』,『가야하』,『두만강』, 『해란강』, 『쿨룽산』, 『부르하통하』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 경제 상황의 급변화와 함께 한국어 출판도 된서리를 맞았다. 반우파 투쟁, 세포기 붉은기 운동 등으로 인해 급속한 쇠퇴기를 맞게 되었다. 1959년 1월 1일 『아리랑』은 제호를 『연변 문학』으로 바꾸었지만 1961년에 정간되었다. 『교육 통신』, 『연변 위생』, 『대중 과학』, 『연출 재료』,『어문 학습 참고 자료』등 전문지들 또한 모두 정간되었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에도 1959년 2월 하얼빈시 문화관에 의해 『송화강』이 창간되어 이곳이 북방 한인[조선족] 문단의 기지 역할을 하면서 한인[조선족] 작가, 문인들을 끌어모았다. 정치지로는『붉은기』조선문판이 출판되었고 1961년 3월 31일『동북 민병』이 창간되었다.

1966년 초부터 문화 대혁명의 10년 동란기를 맞으면서 한인[조선족] 출판은 완전히 소멸된 것과 다름없게 되없었다. 정치 간행물인 『붉은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간 혹은 정간되었다.

새로운 역사 시기의 중국 조선족 출판

1976년에 이르러 중국 문화대혁명이 마무리되면서 새로운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연변을 비릇한 중국 한인[조선족] 집거 지역에서도 사회, 경제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조선문 출판이 전례없는 활력을 찾으면서 흭기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조선문 출판물들의 전문지, 문예지, 종합지들이 더욱 활기를 띠였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정간되었다가 복간된 문예 간행물로는 『연변 문예』,『군중 예술』, 『장백산』, 『송화강』등이 있다. 『장백산』은 1987년 8월 『예술 세계』로 제호를 바꾸었다. 이에 기초하여 새롭게 창간된 문예 간행물로는 『도라지』『문학과 예술』, 『장백산』, 『세계 문학』, 『아리랑』, 『진달래』,『북두성』, 『시내물』, 『세계 아동 문학』,『봄노래』등이 있다.

전문지들의 복간과 창간도 이루어졌다. 『지부 생활』은 1979년 1월에 복간되었다. 『연변 교육』은 1979년 7월에 복간되어 1985년 8월부터 『중국 조선족 교육』으로 개칭, 출판되었다. 『대중 과학』, 『연변 위생』,『연변 일보 통신』, 『연변 방송』, 『흑룡강 통신』등으로 복간되어 출판하였다. 이 외에도 『조선어문 사업 통신』, 『어문 연구』, 『소년 과학』, 『과학과 생활』, 『조선어 학습과 연구』, 『일본어 학습과 교수』, 『조선어문』, 『취재와 집필』, 『신문 연구』, 『조선학 연구』등 전문지들이 창간, 출판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종합 출판물들도 나왔다. 『소년 아동』, 『청년 생활』, 『은하수』, 『새 마을』, 『연변 여성』『꽃동산』, 『홍소병』등이 그것이다.

중국 조선족 출판업의 주축

한인[조선족] 출판 분야에서 연변인민출판사를 비롯한 6개 출판사가 주축이 되어 신문, 잡지, 간행물, 각종 도서 등 각종 출판물을 수십만 종 출판하였다. 중국 조선족 교육 출판사에서는 조선족 교육사, 연변 조선족 교육사, 중국 조선족 교육사료 전집[총 4권 5책에 총 7650여 만 자], 연변조선족자치주 교육지, 중국 조선족 학교지, 조선족 교육 현황지, 조선족 교재 편찬사, 연길시 교육지 등 연변 지역 8개 시, 현의 교육지 등 전문성 사료지만 하여도 몇 십 종에 달한다. 기타 출판사들도 사회 수요에 맞추어 각종 조선문 출판물을 제 나름대로 대량 출판하였다.

1947년 3월 24일 광복 후 첫 중국 한인[조선족]의 정식 출판사가 세워졌다. 1947년 2월 길림 해방구 중학교 교장 회의의 위탁을 받고 전문 중, 소학교 교과서를 출판하기 위하여 창설된 출판사이다.

1951년 8월 19일 연변인민출판사가 창립되었다. 그것은 당시 서적과 정기 출판물의 신속한 발전을 위하여 새로운 인쇄소와 출판사가 절실하였던 것이다. 당시 출판사 사장은 백남표, 인쇄 공장 공장장은 한철, 임직원은 총 40명이였다.

1953년 1월 15일 북경민족출판사가 창립되었다. 이는 연변 외에 제일 먼저 세워진 소수 민족 출판사이다. 이 출판사는 조선문 외에도 중국어, 몽골어, 장족어, 위그르어, 까자흐어으로 소수 민족과 관련된 도서와 잡지를 출판하였다.

요녕성에 조선문 출판 기구가 설립된 것은 1970년대 중반기였다. 1975년 5월 7일 국가 지시 정신에 근거하여 요녕인민출판사 조선문 편역실이 설립되었다. 당시 주임은 허경룡이었다. 1986년 1월 요녕성민족출판사가 창립되었고 사내에 조선문 편집 번역실을 설립하였다. 당시 사장겸 총편집은 허경룡이였다.

1976년 3월 목단강시에서 흑룡강성 조선문 편집 번역실이 설립되었다. 이에 토대하여 1982년 목단강에 흑룡강성조선 민족 출판사가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1983년 사장에 허룡섭이 부사장겸 총 편집에 허광일이 임명되었다.

1986년 11월 17일 연변대학출판사가 창립되었다. 이 출판사는 전국적으로 몇 개 되지 않는 소수 민족 대학 출판사 중의 하나이다. 초창기 사장 겸 총편집자는 정판룡이었다.

참고문헌
  • 최상철, 『중국 조선족 언론사』(경남 대학교 출판부, 1996)
  • 『심양시 조선족지』(요녕민족출판사, 1898)
  • 강소성 남통시 도서관, 박물관편,『김택영 자료』
  • 채영춘·이봉우, 『언론 춘추』(연변인민출판사, 2006)
  • 최상철, 『중국 조선족 신문 출판 연구』(홍콩 아주 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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