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靑州 아리랑-故鄕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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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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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식 | 합창 |
| 작가 | 미상 |
| 작곡가 | 미상 |
| 작사자 | 미상 |
| 감독 | 김태갑 수집 |
| 연주자 | 신철|이상철 |
| 창작|발표 시기/일시 | 1938년 이후 |
일제 강점기인 1938년 길림성(吉林省) 도문시(圖們市) 양수진(凉水鎭) 정암촌(亭岩村)으로 이주한 충북 출신들이 부른 아리랑 노래.
1938년 일제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서 충청북도 청주군, 옥천군, 보은군에서 80여 호가 이주 정착하면서 생겨난 정암촌 마을에서 불린 아리랑이다.
당초 만척 주식 회사에 의해 중국으로 이주한 충북 청주, 옥천, 보은을 포함하여 충주군, 괴산군의 소작농 180호가 만주행 이민 열차를 탔다. 이들 가운데 100여 호는 왕청현(汪淸縣) 합마당향(哈蟆塘鄕)에 정착하고, 80여 호가 왕청현 춘방촌 서백림둔에 정착하였는데 이들은 1947년 혼춘현(琿春縣) 양수향(凉水鄕)에 소속 되었으며 1949년부터 정암촌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도문시 양수진이 되었다. 이들이 부른 「청주 아리랑」은 한인 작가인 김태갑·조성일이 편찬한 『민요 집성』[연변인민출판사, 1981]에 수록되어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후렴) / 울너머 담너머 님숨겨놓고 / 난들 난들 호박잎이 날 속였네 (이하 후렴 생략) / 팔라당 팔라당 갑사나 댕기 / 고운 때도 안 묻어서 사주가 왔네 / 사주는 받아서 무릎에 놓고 / 한숨만 쉬여도 동남풍 된다 / 아리랑 고개가 얼마나 멀어 / 한번 가면 언제나 오신다든지 (신철 창, 김태갑 수집)
2. 아리랑 타령을 그 누가 냈나 / 이웃집 김도령 내가 냈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후렴) / 아리랑 타령이 얼마나 좋은지 밥 푸다 말고 서 엉덩춤 춘다 / 아리랑 말년에 왜 난리 나고 / 갑오년 이후로 왜 동물 치마 / 문경새재 박달나무 / 홍두깨 방멩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멩이 팔자가 좋아 / 큰애기 손길로 놀아만 난다(이상철 창·김태갑 수집)
1930년대 중국으로 이주한 충북 청주 출신이 부른 「청주 아리랑」은 1980년대의 책자에 수록되었으며 일제 강점기 이주민들의 한이 담긴 아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