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 유형 | 작품/무용과 민속극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민족 무용 |
|---|---|
| 형식구분 | 군중무 |
| 공연자/보유자 | 이신자 |
| 비물질문화유산등급및지정번호 | 길림성 1기 |
| 형성 시기/일시 | 1930년대 |
|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일시 | 2007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0년부터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대 |
| 공연장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정화가 문화로 |
1930년대부터 이주 한인들이 접시를 들고 추던 즉흥적인 민속 무용.
「접시춤」은 오래전부터 한인들 속에서 연기되었다. 처음에는 경사스러운 날이나 명절날이면 집안의 온돌에서 얻기 쉬운 접시를 들고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고 한다.
민간 연예인 박정록은 1913년에 길림성 훈춘시 정변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0년에 채진주가 오락 장소에서 손에 접시를 들고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우아한 춤 자태와 익살스러운 표정에 도취되어 저도 모르게 접시를 들고 춤을 추었다. 후에 이름난 「접시춤」 연예인으로 되었으며 그로 인해 전 연변 지역에 전파되었다. 1980년대 이후 전업적인 무대 무용으로 창작되었다.
「접시춤」은 남무와 여무로 나뉘는데 접시를 잡는 방법과 소리 내는 방법은 같다. 두 손에 접시를 들고 추는 춤이라고 하여 「접시춤」이라고 명명되었다. 접시를 잡는 방법과 치는 방법을 보면 첫째, 접시 하나는 엄지와 식지로 접시를 잡고 다른 한 접시는 중지와 무명지에 끼운다. 둘째, 손에 잡고 끼운 접시를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부딪치게 하여 절주 있는 소리를 내게 한다. 셋째, 접시를 세워서 치는 방법인데 한 손의 접시는 평으로 눕혀 잡고 다른 한 손의 접시는 세워서 쥔 다음 세운 접시로 눕힌 접시를 쳐서 소리를 낸다.
「접시춤」은 ‘안딴 장단’ ‘굿거리 장단’ ‘타령 장단’ 등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흥겨운 장소에서 오락으로 진행된다. 한인들 춤에서 접시를 사용한 것은 한족들의 쾌발처럼 한 손에 접시를 두 개씩 올려놓거나 엎어놓고 앉은 자리에서 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양손으로 접시를 들고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춤을 춘다. 현재 유행되고 있는 「접시춤」은 남무와 여무로 나뉘는데 접시를 잡는 방법과 소리 내는 방법은 같지만 춤 동작과 표정 면에서 일정하게 다름을 보인다.
남성의 「접시춤」 가락은 타령 장단을 위주로 하고 또한 다른 장단 절주도 채용되기도 하였다. 연기자는 장단의 절주 속에서 접시 두 쪽을 한 손에 잡고 슬쩍슬쩍 때리면서 경쾌한 박자 소리를 낸다. 얼굴 표정은 익살스러우며 동작은 다른 전통적인 춤처럼 규범화 되지 않고 머리와 목, 몸과 팔, 다리와 발을 전후 좌우로 움직인다. 여성의 「접시춤」 가락은 약동적인 ‘안땅 장단’에 맞춘 동작으로 자태가 유유하고 느슨하며 한인 부녀들의 섬세하고 경쾌한 정서를 잘 보여준다.
「접시춤」은 명절이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는 즐기는 춤으로 잔치집에서 부녀자들이 음식을 나르는 장면, 모여 앉아 음식을 권하는 장면, 오락판에서 서로 재주를 부르는 장면 등 생활적 동작들을 배합하여 박력이 있다.
「접시춤」은 훈춘 대표대, 훈춘시 예술단, 길림성 가무단, 훈춘 해당화 예술단, 연변 가무단 훈춘 무용단 등 훈춘시 여러 단체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조선족 접시무」는 2007년에 길림성 인민 정부에서 비준한 제1기 길림성급 무형 문화유산 대표 종목이 되었다.
주요 분포 지역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한 기타 중국 한인[조선족] 집거구를 포괄한다. 주요 보존 단위는 훈춘시 문화관이고 대표적인 기능 보유자는 이신자(李信子)[여, 1940년 훈춘시 출생]이며 1960년부터 민간 예인들을 찾아다니며 「접시춤」을 배우고 익혀서 보급하였다.
「접시춤」은 한인들의 노동과 일상 생활을 기초로 창작된 민족 무용으로 명절이나 혼례식 등에서 접시를 나르는 모습을 집단 무용으로 창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