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모춤」

한자 象帽춤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무용과 민속극
지역 길림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민속 무용
형식구분 혼성 군무
공연자/보유자 김명춘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일시 2009년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일시 2006년 6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1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2년
공연장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공연장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시
정의

상모를 쓰고 노는 농악무의 한 부분이자 중국 정착 이주민들에 의해 전승된 민속 무용.

개설

상모춤은 난이도와 예술적 가치가 높은 농악무의 한 부분으로 음악, 노래, 무용이 일체화된 예술로 표현된다. 상모춤은 자태가 활발하고 우아하며 음악이 흥겹고 경쾌하여 한인의 민족적 기질을 잘 반영하고 있다.

1951년에 예술가 조득현의 노력으로 민간 예인 하태일등의 참여 하에 시대 정신을 반영한 무대 예술로 변모하게 되었으며 연변 예술 학교와 민간의 농악무 강습반에서도 상모춤과 소고춤을 중심으로 한 농악무를 가르쳐 후대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이 지난 후 1980년대에 들어서 개혁개방 정책이 실시되면서 상모춤을 비롯한 농악무는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주로 안도현(安圖縣)의 신둔(新屯)과 왕청현(汪淸縣)의 백초구(百草溝)를 중심으로 한인 무용 예술의 자랑으로 되었는데 특히 왕청 백초구 농악무는 연변 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리하여 왕청현 백초구는 ‘상모춤의 고향’으로 명명되어 농악무를 보급하는 전초 기지가 되었다.

구성 및 형식

상모춤은 농악무 가운데 중요한 형식으로 종류가 많고 춤 기술도 다양하다. 장상모, 중상모, 단상모, 선상모, 털상모, 꼬리상모, 불꽃상모 등이 있다. 상모를 돌리는 기술은 좌우로 돌리기, 앞으로 세우기, 한번 돌리기, 두 번 돌리기, 세 번 돌리기가 있으며, 서서 돌리기, 앉아서 돌리기, 무릎 꿇고 돌리기, 손으로 땅 짚고 엎드려 돌리며 전진하기, 상모를 돌리면서 몸을 동시에 옆으로 회전하는 잡아 뛰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상모 돌리기는 외상모와 양상모에서 꼭두상, 흔들기, 상모도돌이, 이슬털기 등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연변의 농악무는 현시대에 들어서서 전통적인 농악 놀이의 구성과 특징을 살리면서 시대의 숨결이 담겨있는 무대 예술로 변모하였다.

새로 형상화된 농악무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잦은모리 장단에 맞추어 농악 대열이 등장하여 추는 남녀 혼성 군무이다. 남성은 상모를 쓰고 소고와 소고채를 들며 복장은 흰색 저고리, 바지에 하늘색 쾌자를 입는다. 여성은 소고나 장고를 지니고 몸에는 붉은 치마, 노란 저고리를 입고 멜띠를 걸친다. 둘째는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추는 여성 군무다. 셋째는 휘모리 장단에 맞추어 추는 빠른 춤마당이다. 여기서 상모를 돌리는 장면은 농악무를 절정에 이르게 한다.

중국 한인의 상모는 징장을 참대와 구슬로 꾸미고 물채 끝에는 꿩 털이나 흰 종이 오리를 단 전립이다. 형태와 빛깔도 다양한 종류며 상모 꼬리의 길이에 따라 소상모, 중상모, 대상모로 나뉜다. 대상모는 중국 한인만이 상용하는 상모로서 백초구에서 1970년대부터 사용되었다. 상모를 돌리던 이들이 누가 더 긴 상모를 돌릴 수 있는지 내기하는 와중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농악무의 전승 보유자인 김명춘이 사용하는 대상모는 33m로써 세계에서 가장 긴 상모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중국 한인[조선족] 농악무중 ‘천권 기교법’, ‘삼채색 띠돌리기 기교법’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해지는 기법이다.

내용

과거 농악무는 주로 남자들이 춘 춤으로 춤가락이 매우 호탕하고 활기가 있었다. 농악무에서 ‘까치 걸음[곱디디여 달려가기]’은 매우 독특한 발 움직임 동작인데 까치 걸음으로 움직이는 몸 자세는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자반뒤기와 같은 연풍 대동작들이 춤 가락과 어울려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연풍 대동작은 높은 기교적인 춤 동작으로서 춤을 절정으로 이끌어간다. 상모춤은 농악무의 최고 기량으로 상모 돌리기의 율동은 사람들의 흥겹게 한다.

현황

한인 상모춤은 김명춘이 왕청현 문화관 부관장으로 왕청 상모춤 예술단을 창립하고 단장을 맡고 있다. 왕청현 백초구는 ‘상모춤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4-5세 어린이부터 7-80세 노인까지 상모춤을 추며, 왕청현 제2 소학교에서는 상모춤을 학생들의 필수 수업으로 가르치고 있다. 길림성왕청현은 농악무의 고향으로 불리고 있으며, 농악무의 최고표현 형식이 상모춤이다.

2006년 6월 국무원 제1기 국가급 비물질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김명춘은 중국 한인[조선족] 제4대 상모춤 종목 대표 보유자로 인정 받았다. 2009년 9월 30일 중국 한인[조선족] 농악무는 이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작 목록에 수록되었다.

이 과정에 여러 농악무 전수자들을 배출 하였는데 1세대로 조득현, 하태일, 2세대로 양태명, 박종규, 홍수천, 마문호, 한세호, 최호욱, 안재호가 있으며, 3세대로 한동국, 강상범, 4세대로 김명춘, 김만준, 한상일 등이 있다.

농악무의 분포 지역은 길림성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동북 3성 한인[조선족] 집단 거주 지역이 포괄되며 중점 전승지는 길림성 왕청현과 요령성(遼寧省) 본계시(本溪市), 철령시(鐵嶺市)이다. 주요 보존 단위는 왕청현 농악무 예술단이며 대표적인 보유자는 제4대 전승인인 김명춘(金明春)이다.

김명춘은 1957년에 왕청현 백초구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릴 때부터 농악무에 흥미를 가지고 여러 스승한테서 기교를 배우고 익혔다. 2008년 국가 문화부로부터 ‘국가급 무형 문화 유산 중국 한인[조선족] 농악무 제4대 계승인’으로 지정 되었다. 2012년에 왕청현에서는 예술 단체와 주민, 학생들을 동원하여 천인(千人) 상모춤을 연출하여 기네스북에 등재 되었다.

의의와 평가

상모춤은 이주 한인들에 의해 왕청현에 전파된 것으로 1927년 왕청현 대흥구 영벽촌으로 이주한 강원도 춘천 사암촌 주민들이었다. 이들의 농악은 가야하 기슭의 서위자, 백초구, 면전의 한인들에 의해서 발전되어 오늘날 왕청 농악의 기틀이 되었다.

참고문헌
  • 이옥봉 편저, 『조선 고전 무용』(요령민족출판사, 1985)
  • 김정훈, 『중국 조선족 민속 춤과 민속 놀이』(민족 출판사, 2010)
  • 연변주 문화국, 『연변 무형 문화 유산 화첩』(연변인민출판사, 2011)
  • 연변 문화 예술 연구 센터 편집, 『연변 비물질 문화 유산 자료집』(2013)
  • 장선애,「중국 동북 3성 조선족 비물질 문화 유산에 대한 연구」(용인대 박사 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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