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 유형 | 작품/무용과 민속극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민속 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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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구분 | 군중무 |
| 주요등장인물 | 여러 명 |
| 공연자/보유자 | 박진준 |
|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일시 | 2007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5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4년 8월 1일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4년 |
빨래나 다듬이질 할 때 사용하는 도구인 방망이 방치를 이용하여 추는 춤.
「방치춤」의 도구는 다듬이돌과 두 개의 방치이다. 방치는 한인의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이나 옷가지들을 다듬을 때 두드리는 나무 방망이를 일컫는다. 방치 종류는 소방치·중방치·대방치로 나뉘는데, 학생들은 소방치를 사용하고 대방치는 일상 생활에서, 공연에서는 38㎝ 정도의 중방치를 많이 쓴다. 다듬이돌의 길이는 41㎝, 너비는 31㎝이다.
한인 여성들은 천을 짜고 풀을 해서 방치로 두드려 주름을 편 천으로 집식구들의 옷을 만들었다. 또한 결혼 잔치나 환갑잔치를 치르게 될 때면 천에 풀을 해서 방치로 두드리고 햇볕에 말리는 절차를 여러 번 반복해 천을 하얗게 만들어 사용했다.
「방치춤」은 방치를 양손에 잡고 북가락처럼 사용하는데, 장단이 느릴 때는 천천히 치고 잦은 가락일 때는 빠르게 자주 왼손·오른손을 높이 교차시키면서 두드린다. 일반적으로 「방치춤」은 소방치·중방치·대방치를 사용하는데 공연에서는 중방치를 많이 쓴다.
「방치춤」은 보통 여러 명이 연기하는데 다듬이돌을 1열로 혹은 2열로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놓고 연기자들은 두 개의 방치를 들고 자기가 맡은 다듬이돌을 두드린다.
「방치춤」은 한인 여성들이 방치를 들고 냇가에 나가서 빨랫감을 두드릴 때 일정한 절주에 맞추어 어깨를 아래위로 으쓱거리면서 흥얼흥얼대던 상황을 표출한다. 또한 마른 빨래는 주름을 펴기 위해서 도닥도닥 다듬이질을 하면서 동작을 보여준다. 한인 여성들의 실생활에서 인용하여 자유 오락 형식으로 발전한 「방치춤」은 점차 무용 예술로 자리를 잡아 현지 한인의 전통 무용으로 보호 전승되고 있다.
방치를 두드리는 방법은 자기의 다듬잇돌을 고유한 장단에 맞추어 ‘땅, 땅’ 소리를 연이어 낸다. 방치를 두드리면서 그저 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치는 과정에 일정한 춤가락을 형성하는데 팔과 손, 어깨와 몸 등 신체 부위를 모두 동원하여 경쾌한 소리와 더불어 재치 있고 활력적인 동작들이 연출된다. 옆으로 치기를 하며 옆 사람이 맡은 다듬이돌을 동시에 넘겨 치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동작들을 결합함으로써 춤가락을 다양하게 한다.
「방치춤」은 1965년 도문시 향상가두가 설립되면서 시작하였고 1994년 8월 1일 「방치춤」 공연단이 정식 결성되었다. 2014년 현재 제6대 전승인 허경옥(許京玉)[여, 1964년생]이 춤을 가르치고 있다. 김채봉에게 「방치춤」을 배웠다고 하며, 현재 노동과 생활상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춤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2004년 4월부터 「방치춤」 공연팀은 흥강사회구역[興疆社區]에 편입되면서 20명의 공연 인원을 확보하고 보급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방치춤」은 2007년에 길림성 인민 정부에서 비준한 제1기 길림성급 무형 문화유산 대표 종목에 선정되었다.
「방치춤」의 주요 분포 지역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한 기타 중국 조선족 집거구를 포괄한다. 「방치춤」의 제1대 전수자는 1921년에 함경북도에서 출생하고 1946년에 도문 지역에 이주해온 박진준(朴振俊)이다. 그는 「방치춤」을 보급하면서 많은 전승인을 배출해 냈다.
「방치춤」은 한인들이 옷을 깨끗하게 입는 전래적인 특별한 풍속이 있어 빨래를 자주하는데 이때 사용한 빨래판을 두드리던 방치를 활용하여 한인 여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민속 무용으로 승화 발전시키고 민족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