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착실한 감農軍 |
|---|---|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양식 | 남성 중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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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 이인희 |
| 작사자 | 강호혁 |
| 창작|발표 시기/일시 | 1961년 |
감 농사를 짓는 농촌의 선진 일꾼을 자랑하는 노래.
작곡가 이인희(李仁戱)[1924~1993]는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42년부터 중국길림성의 소학교와 조선족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51년부터 연변 사범 학교 예능과 교원, 1953년부터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음악 편집을 하며 작곡을 하여 260여곡을 썼으며 150여종의 음악 서적을 편집 출판하였다.
동요 「학교로 가요」, 대중 가요 「젊은 탐사 대원의 노래」·「떼목이 흐른다」 등의 작품과 작곡집 『도라지꽃』[요령 인민 출판사, 1979] 등이 있다. 작사가 강호혁은 「여량 수레 령 너머 가네」 등 많은 작품을 썼다.
1960년대 농촌은 생산 노동을 집단화 하였는데, 생산대는 대장, 회계, 출납으로 구성되었다. 대장은 정치 대장, 생산 대장, 부녀 대장이 각각 있었으며 소나 말을 관리하는 사양원, 차 운전을 전문하는 운전수, 논물을 전문으로 보는 논물 관리원 등 직책이 따로 있었다.
따라서 감 농군의 대장을 칭찬하는 노래로 트랙터 운전수, 논물 관리원, 사양원 등 세분화된 업종마다 거의 노래가 만들어져서 불렸다. 당시 농촌에서 감을 생산하는 생산 대장의 역할과 노고를 노랫말로 하여 자랑스럽게 불렀다.
1960년대 연변 지구의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공청단 연변주위는 ‘농촌을 사랑하며 사회주의 새 농촌을 건설하는 선진 인물들의 사적을 합습할 데 관한 결정’을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농촌 선진 인물이 선출되었으며, 이들은 새농촌 건설 사업이 과업이었다. 1961년에 강호혁 작사, 이인희 작곡으로 이 중창곡이 탄생하였으며, 당시의 시대적 사조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 마을 김대장은 착실한 감농군 / 언제봐도 선줄군 솜씨 빨라 더욱 좋네 / 일감마다 빈틈없이 틀어쥐고 해 제끼니 / 생산대의 생산진도 계절마다 앞선다네 / 아무렴 그렇지 그래두 말이 있나 / 아무렴 그렇지 그렇지 그래두 말이 있나 두말이 있나
우리 마을 김대장은 일 탐내는 생산능수 / 어려운 일 무거운 일 도맡아서 해 제끼니 / 듣기 좋은 칭찬은 온 마을에 떠돌고 / 평비마다 붉은 꽃이 앞가슴에 핀다네 / 아무렴 그렇지 그래 갈 데가 있나 / 아무렴 그렇지 그렇지 그래 갈 데가 있나 갈 데가 있나
우리 마을 김대장은 일잘하고 솜씨있어 / 생산생활 문화학습 빈틈없이 틀어쥐고 / 알뜰살뜰 살펴주니 논밭마다 기름돌고 / 사람마다 웃음피니 올해 풍수 어김없네 / 아무렴 그렇지 그래 틀림이 있나 / 아무렴 그렇지 그렇지 그래 틀림이 있나 틀림이 있나 (후렴) 사시장철 일 잘하는 착실한 감농군 / 첫손가락 꼽히우는 마을의 보배라네
농촌 선진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생산대 대장인 감 농사 일꾼들의 노고를 환상적인 음악으로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