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處女의 노래 |
|---|---|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노래 |
|---|---|
| 양식 | 여성 독창 |
| 작곡가 | 정진옥 |
| 작사자 | 최정연 |
| 연주자 | 김인숙|방초선 |
| 창작|발표 시기/일시 | 1953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6년 |
정진옥이 1953년에 작곡한 여성 표현 독창곡으로 집체 농장을 이룬 후에 시집가겠다는 다짐의 노래.
작곡가 정진옥[鄭鎭玉:1926~1981]은 50년대 초 용정(龍井) 동성향(東盛鄕)에 지룡순이라는 처녀가 마을이 기계화된 집단 농장이 되기 전에는 시집을 안 가겠다는 말을 듣고 당시 청년들의 사상을 발견하고 최정연 극작가에서 이 가사를 부탁하였다고 한다.
정진옥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중국으로 건너가 봉천 공업 학교를 다니면서 음악 공부를 하였다. 1945년 이후 중국 인민 해방군 166사 문예 공작단에서 연주자로 활동했고, 1952년 장춘 영화 촬영소에서 작곡 활동을 하다가 연변 가무단 단장을 역임하고 중국 음악가 협회 연변 분회 주석을 겸했다.
최정연 극작가는 1920년 북한에서 태어났으며 1937년 일본 유학을 하고 1944년 중국매하구로 돌아왔으며 1947년부터 1952년까지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다. 1948년 장막극 〈민주련군이 오던 날〉을 썼으며, 단막극〈완두씨〉〈귀환병〉 등을 썼으며 판소리〈떡메의 증오〉〈범바위골참상〉과 가사〈처녀의 노래〉와〈아름다운 나의 고향〉등 우수한 작품을 썼다.
희곡 작가로서 극적인 성격의 가사를 띤 것은 그의 창작 스타일로 볼 수 있다. 반우파 투쟁으로 창작 권리를 박탈당한 후 10년 만에 장막극 〈해토 무렵〉, 〈옥녀동〉을 내놓았다. 〈해토 무렵〉이 길림성 작품 평의회에서 일등상을 받았고, 시나리오 〈첫봄〉이 연변 작가 협회 평의회에서 우수상, 〈옥녀동〉이 주 텔레비전 방송국 작품 우수상을 받았다. 가사 〈처녀의 노래〉는 제6차 세계 청년 예술 축전에서 은상을 수여 받고 〈눈 녹으니 꽃이 피네〉는 연변에서 일등상을 받고 〈아름다운 나의 고향〉은 외국에 번역 소개되었다.
「처녀의 노래」는 1953년에 최정연 작가, 정진옥 작곡으로 창작되었으며 1956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6차 세계 청년 축제에서 〈장백의 노래〉와 함께 은메달을 수여받았다. 처음에는 향토 맛이 나게 노랑 저고리 분홍 치마에 댕기를 맨 김인숙이 불렀고, 후에는 소프라노 방초선이 세계 청년 축제에서 불렀다. 이 노래는 여성 표현 독창곡으로 일정한 줄거리가 있는 노래를 가수가 적절한 동작을 곁들이며 부르는 형식으로 여성이 부른 것이다.
해란강 사이 두고 풍년가 우렁찬데 / 저쪽에는 총각이 살고 이쪽에는 처녀가 산다나요 / 부지런한 두 사람은 일터에서 정이 들어 / 만나며는 반가웁게 이야기를 한다나요 / 그 총각 권하는 말이 / 즐거운 우리 마을 살기가 행복하니 / 어서 시집을 오라나요 / 시집은 가 무엇 하나요 / 처녀가 제일 좋지 제 고장 리별하고 / 시집은 안 갈테요
그 총각 안타까와 무툭하게 쏘는 말이 / 아름다운 꽃송이도 때 지나면 그만이지 / 황차 처녀 늙게 되면 볼꼴이 망측하지 / 제 아무리 처녀라도 얻어가지 않는 단다
총각은 화가 나도 처녀는 늙지 않아 / 벼 모가 자라듯이 어여쁘게 젊어가요 / 사랑하는 우리 농장 기계화로 내달리고 / 광명한 내 청춘은 한없이 즐거워요 / 다정한 우리 사랑 일터에서 맺었으니/ 하루 바삐 하루 바삐 집체농장 이루고 / 저 산에 사과배꽃이 향기롭게 피여날 제 / 나는 나는 새 집 짓고 그 총각과 살테야요
이 노래는 노동하는 여성이 집체 농장을 이루면 시집을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당시 젊은이들의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