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瀋陽市 神華 書店 朝鮮文 書店 |
|---|---|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 유형 | 지명/시설 |
| 지역 | 요령성 심양시 서탑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서점 |
|---|---|
| 개관|개장 시기/일시 | 1948년 11월 20일 |
| 이전 시기/일시 | 1953년 10월 |
| 개칭 시기/일시 | 1951년 6월 |
| 개칭 시기/일시 | 1954년 |
| 최초 설립지 | 심양시 화평구 시부대로 3단 12호 |
| 주소 변경 이력 | 심양시 태원가로 |
| 현 소재지 | 심양시 화평구 시부대로 2단 22호 |
요령성(遼寧省) 심양시(瀋陽市) 서탑(西塔) 거리에 있는 한글 서적 전문 서점.
심양시 신화 서점 조선문 서점은 1948년 11월 20일 문을 연 심양시에 있는 19개의 신화 서점 중 유일한 조선문 서점이다. 당시 조선문 서점은 심양시 화평구 시부대로 3단 12호에 있었고 공식 명칭은 연변교육출판사 심양 지사였다. 1951년 6월 동북국이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동북 조선 인민 서점을 설립한 뒤로 서점 명칭이 동북 조선 인민 서점 심양 지점이라 바뀌었다.
1953년 10월 동북 조선 인민 서점이 심양 지점을 심양시 신화 서점에 인계하면서 번화가인 태원가(太原街)로 이전하면서 심양시 신화 서점 태원가 서점 조문부로 개칭되었다. 1954년 심양시 신화 서점 조선문 문시부(朝鮮文門市部)로 개칭하였다가 최종 심양시 신화 서점 조선문 서점으로 고착,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편, 1955년 조선문 서점은 태원가가 번화하기는 하지만 한인[조선족]들이 집거해 있는 서탑 지역을 떠난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화평구 시부대로 2단 22호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 1973년 조선문 서점은 심양시 양식국에서 서점 자리에 직원 사택을 건설하는 바람에 심양시 조선족 백화상점에서 ‘셋방 살이’ 신세로 전락하였다. 1977년 심양시 민족사무위원회의 후원으로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고 오늘까지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심양시 신화 서점 조선문 서점은 창립 초기에 연 판매 총액이 1만원도 못되는 작은 서점이었지만, 2008년 현재에는 약 300만 위안에 달하는 중국 국내에서 가장 큰 조선문 서점으로 탈바꿈했다.
1960년대부터 북한의 서적이 들어오고 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의 도서들도 대량으로 들어오고 있다.
심양시 신화 서점 조선문 서점에서는 요령성 뿐만 아니라 북경(北京)·상해(上海)·광주(廣州)·남경(南京)·산동(山東)·호남(湖南)·호북(湖北)에 이르기까지 도서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한국·북한·미국·캐나다 등 외국의 독자와 도서관에도 도서를 납품하고 있다.
심양시 신화 서점 조선문 서점은 2010년에 총 6,670종에 21만 5,136권을 구입·판매하였는데, 그중에서 조선문 도서는 2,830종에 3만 3,825권이 포함되었다. 2011년에는 4,173종에서 24만 3,102권을 구입·판매하였는데, 그 중 조선문 도서는 1,826종에 3만 1,462권으로 줄어들었다. 요령성 한인[조선족] 인구 24만 명에 대비 1인당 겨우 한권 정도 책을 구입하는데, 조선문 도서는 이보다 더해 8명당 한 권 밖에 안된다. 이에 민족 출판사, 연길 신화 서점, 심양 서점 책임자들과 발전 방안에 대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