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文藝 宣傳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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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문화 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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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동북 3성 지역의 한인들이 활동한 문예 단체.
문예 선전대는 문예 선전 활동을 전개하는 문예 단체로 일반적으로 아마추어 단체를 가리킨다. 중국의 문예 선전대는 지난 1930년대 말 항일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태어났다. 부대 지휘원과 전투원들의 문화 생활을 향상시키고 항일 투쟁의 승리를 추진하기 위해 팔로군 부대에서 조직된 문예 선전대를 모태로 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 중국에서 문예 선전대를 대대적으로 보급한 것은 광활한 농촌과 도시의 기업, 그리고 부대 내의 대중 문화 생활을 풍부히 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중국에서 부대와 공장 기업 및 농촌과 학교 등에서 광범위하게 문예 선전대가 성립되고 활동한 것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기까지였다.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농촌만 보더라도 거의 매 촌마다 문예 선전대가 있었다.
농한기마다 연습해서는 촌마을에서 공연했을 뿐만 아니라 향(鄕) 내의 기타 마을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거나 한 향 혹은 현·시급 문예 콩쿠르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 사례로 1960년대 초, 연길시 장백향 신풍촌의 문예 선전대는 거의 해마다 주와 시급의 문예 콩쿠르에서 단체 우승을 하였다.
1980년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문예 선전대는 노인 협회 예술단, 가두 주민 예술단 등 형식으로 탈바꿈을 하였다. 그러나 자력으로 자금을 모아 악기와 복장을 사고 출연 경비를 해결하는 전통과 형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문예 선전대는 농촌, 기업, 부대와 가두 그리고 학교의 문화 생활의 주력군으로 되어 정신문명 건설에 크게 일조하는 한편 우수한 민족·민간 문화를 전승 및 발전시켰다.
다양하고 많은 종목들을 자체적으로 창작, 연출하였으며, 많은 인재가 속출하기도 했다. 그 사례로 중국의 유명한 소품 배우 조본산은 17살에 향 문예 선전대에 참가했고, 이설건 역시 학교 문예 선전대에서 활약하다 스타가 된 인물이다.
현재 중국의 문예 선전대는 대체로 공익형과 상업형 등으로 나뉜다. 공익형이란 정부측의 지시 정신에 따라 문화 하향, 행사 모임에서의 공연 등을 가리킨다. 상업형이란 소그룹 형식으로 잔치, 개업식 등에 참가하여 공연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 사례로 중국에서 유명한 “아리랑” 그룹 등이 상업형 공연 그룹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문예 선전대는 해방 전 항일 전쟁 혹은 해방 전쟁과 해방 후 여러 사회주의 건설 단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문예 선전대는 그 형태와 경향을 막론하고 광대한 도시와 농촌, 교정과 부대의 병영 등에서 군중과 학생 그리고 해방군 장병들의 문화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데 일조하였으며 이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