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열사 기념물

한자 抗日 烈士 記念物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중국 정부 또는 한국 정부가 한인의 항일 전적지와 열사를 기리기 위해 설치한 기념물.

길림성·연변조선족자치주의 항일 열사 기념물

1920년 1월에 있었던 ‘간도15만원 탈취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1990년 6월 30일 용정 3·13 기념 사업회에서 용정시(龍井市) 지신향(智新鄕) 승지촌(勝地村)에 ‘15만원 탈취 사건 기념비’를 세웠다. 이 기념비는 용정시 지신향에서 백금으로 들어가는 도로 입구[東良於口]에 있다. 2009년 주변 정화 사업을 통해 기념비에 오르는 계단을 정비하였으며, 2009년에 용정시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용정시 합성리(合成里)에 용정 3·13 만세 운동 당시 순국했던 애국 지사들이 묻혀있는 묘역이 있는데, 1993년 5월 화강암으로 ‘3·13 반일 의사능’이라고 새긴 묘비가 세워졌고, 1994년 용정시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용정 3·13 기념 사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용정시 광화서로용정 제1유치원 내에 1919년 북간도 지역 3·13 항일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모임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2009년 3·13 기념 사업회가 ‘3·13 반일 집회’라는 표지석을 세웠고, 용정시 문물 중점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용정시 광신진(光新鎭) 승지촌 하승지에 1930년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기 위해 전개된 5·30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0년대에 용정3·13 기념 사업회가 ‘5·30 폭동 기념비’를 세웠고 용정시 중점 보호 문화재로 등록되어 용정시 문체국 문물 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용정시명동촌(明東村)북간도에서 활동한 기독교계 민족 운동가 김약연(金躍淵)의 기념비가 서있다. 본래 기념비는 1942년에 건립되었으나, 문화 혁명 때 일부 파손되었다. 이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하고 기념비각 등의 보호 시설을 설치하였다.

용정시명동촌에 독립운동의 근거지이며 민족 운동의 산실이 되었던 명동 교회가 복원되어 있는데, 현재는 명동 역사 전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이곳에 김약연 등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북간도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학교인 명동학교(明東學校)가 있었다. 1984년 용정시 문물국 조사 당시에 교원 숙소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그 후 모두 철거되었다. 2009년 용정시 정부에서 명동학교 청사 복원을 진행하여 2010년 8월 경에 완공되었다. 2011년 8월 한국 독립 기념관의 지원을 받아 명동촌 역사 기념관으로 전시를 새롭게 꾸몄다. 이외에도 용정시 명동촌에는 민족시인 윤동주가 15세까지 살았던 생가와 2012년 건립된 역사 전람관이 있다.

용정시 광신진 합성리 동산 공동 묘지 내에는 1945년 3월 일제에 의해 일본에서 피살된 송몽규(宋夢奎)의 유해가 묻힌 묘소가 있다. 송몽규의 묘소는 원래 용정시 광신진 장재촌과 명동촌 사이에 안치되었는데, 1990년 용정시 합성리 동산에 있는 윤동주(尹東柱) 묘소 바로 옆으로 이장하였다. 윤동주 묘소는 2003년 7월 호주시드니에서 살고 있는 오형범·윤혜원 여동생 부부가 15년 만에 다시 개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용정시 민성가(民聲街)용정 중학 내에는 용정 내 6개 중학의 역사와 윤동주의 생애와 주변 인물 등 역사적 사건 및 인물 중심으로 전시한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윤동주 기념관은 한국독립 기념관과 연변대학 민족 연구원 민족 역사연구소가 공동으로 내부 전시 자료를 교체·보완하여 2005년 12월 16일 재개관하였다.

용정시 용정 길림성 변방 총대교도대에는 1920년 캐나다 장로파 교회 선교사들이 세웠던 은진학교의 옛 터를 기념하기 위한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용정시 용정 실험 소학교에 1906년 설립된 민족 교육 기관이자 만주 지역 교육 기관의 모태가 되었던 서전 서숙(瑞甸書塾)이 있던 곳에 1995년 용정 항일 역사 연구회가 세운 ‘서전 서숙 옛터’ 기념비가 있다.

용정시천보산 계곡에 북로 군정서(北路軍政署)홍범도(洪範圖)의 독립군 연합부대가 1920년 10월 24~25일 천보산에서 일본군 1개 중대를 습격하여 승리를 거뒀던 마을 입구에 ‘천보산 전적지’가 세워져 있다.

연길시 소영향(小營鄕) 와룡촌(臥龍村) 4대 언덕, 사은 기념비에서 동남쪽 300m 언덕에는 창동학교(昌東學校) 출신으로 경신참변 때 학살된 독립운동가 정기선(鄭基善)을 추도하여 위해 후손들이 세운 비가 있다.

연길시 소영진(小營鎭) 민주촌(民主村) 민흥(民興) 제3 촌민소조(村民小組)에 창동 학교 출신들이 은사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35년 9월에 세운 ‘창동 학교 사은 기념비’가 있다. 2003년 6월 연길시 문물 관리소·민주촌 촌민 위원회·민주 소학교가 사은비를 보수하였다. 비석을 중심으로 10m 이내 지역을 보호 지역으로 지정하였고, 콘크리트 기둥에 철 파이프로 된 난간을 설치하여 기념비의 보호 시설을 설치해 놓았다.

연길시 하남가(河南街) 16호연변 예술 극장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 정부가 1935년 6월 김명주(金明柱)·이태근(李泰根)·이영춘(李英春) 3인을 비롯한 결사대 17명의 파옥 지휘부가 주도하여 49인이 탈출한 파옥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 6월 “연길 감옥 투쟁에서 영용히 희생된 선렬들이여 영생 불멸하리!”라는 글귀가 새겨진 ‘연길 감옥 항일 투쟁 기념비’를 세웠다.

혼춘시(琿春市) 영안진 대화구림장에는 1920년 간도 참변 때 희생당한 북일학교(北一學校)의 교감 김남극(金南極)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1995년 연변대학최용린 교수가 대황구에 김남극 묘비를 세우고 열사의 공적을 추모하다가, 1999년 김남극의 친척들에 의해 새롭게 김남극·양병칠(梁柄七) 지사의 묘비가 세워졌다.

혼춘시 영안진 대황구림장에 1933년 9월 항일유격대 13명이 희생당한 곳에 1960년대 혼춘현 인민 정부가 ‘대황구 13 열사 기념비’를 세웠으나 오랜 기간 풍화 작용에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이것을 2005년 7월 혼춘시 조직부 당사 연구실에서 파손된 기념비를 새로 화강암으로 세웠고, 혼춘시 혁명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13열사의 묘소는 한일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으며, 중간에 혼춘시 인민 정부에서 세운 ‘영생불멸’ 비석이 세워져 있다.

왕청현(汪淸縣) 대흥구(大興區) 진후하촌에 해방 후 왕청현 정부가 왕청현 당위서기로 활동하던 김상화 열사의 공적을 기리리고자 그가 순국한 후하촌 입구에 혁명 열사 기념비를 세웠으며, 김상화의 목을 효시한 느릅나무를 왕청현 중점 보호 문화재로 보호하고 있다.

왕청현 나자구진(羅子溝鎭)나자구 중학교 앞에는 1934년 동북 인민 혁명군이 나자구에서 일본군과 치렀던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나자구 전투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는 왕청현 중점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왕청현 나자구진 태평구에는 1935년 6월 동북 인민 혁명군 제2군의 전과를 기념하기 위해 2005년 8월 연변대학 민족 역사 연구소와 왕청현 문물 관리소가 공동으로 설립한 ‘나자구 전투 기념비’가 있다. 왕청현 중점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화룡시(和龍市) 용성향(龍城鄕) 청호촌(淸湖村) 청호중산(淸湖中山)의 작은 구릉에 대종교의 삼종사 백포(白圃)서일(徐一), 홍암(弘巖)나철(羅喆), 무원(茂園)김교헌(金敎獻) 등의 묘비가 있고, 1991년 9월 화룡시 인민 정부가 반일 지사 무덤이라 하여 화룡시 문화 유물 보호단위로 지정하였다.

화룡시 청산리 임장 입구에는 2001년 한국 독립군들이 일본군을 대파했던 청산리 대첩 8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청산리 항일 대첩 기념비’ 있다. 기념비에는 건립 취지문과 건립 경위를 밝힌 글을 새겨져 있다.

화룡시 와룡향 어랑촌에는 1933년 1월 19일 중공 화룡현 항일 무장 유격대 중 13명이 일제 연합 토벌대를 물리치다가 장쾌하게 산화한 곳이라고 기록돼 있는 ‘십삼용사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화룡시 서남부에는 1940년 항일 무장 단체가 활약하였던 곳에 화룡 인민 정부가 1993년 3월 세운 ‘홍기하 전투 유적지’가 있다.

도문시(圖們市)봉오 저수지에 1920년 6월 6~7일 홍범도·최진동(崔振東)의 독립군이 일본군과 전투하여 승전을 거뒀던 곳에 1993년 6월 ‘봉오동 반일 전적 기념비’가 세워졌다. 그 뒤 ‘봉오동 승첩 기념비’가 원래 승첩 장소가 아닌 봉오동 저수지 남쪽 200여m 떨어진 곳에 건립되었으며, 2010년 주변이 심하게 훼손되어 일부 수리하였다. 2013년 8월 원래의 비 위치에 새롭게 만든 비를 세웠으며, 기존에 있던 비는 새롭게 조성된 비와 멀지 않은 곳으로 옮겨졌다.

통화현(通化縣) 부강향(富强鄕) 배달촌(倍達村)에 1918년 이회영(李會榮) 등이 지원하여 조용석(趙庸錫)이 설립한 민족 학교인 배달 학교(倍達學校)의 참안 묘역이 있고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20년 일제의 경신 참변 때 희생당한 교장 조용석을 비롯한 교직원 김기선(金基善)·조동호(趙東鎬)·승대언(承大彦)·승병균(承昞均)·최찬화(崔贊化)·김기준 등 7명을 기리고자 한 것이다. 1996년 묘비와 묘소가 조성되었다.

화전시 홍석립자 소유수하자 전적지에는 조선 혁명군동북 항일 연군에서 활동했던 최윤구(崔尹九)를 기리기 위해 1990년 화전시 인민 정부가 세운 ‘최윤구 기념비’가 있다.

안도현(安圖縣) 이도백하( 二道白河) 내두산촌(奶頭山村) 입구의 왼쪽 언덕에는 3개의 기념비가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념비는 1959년에 조선 역사 고찰단이 세운 것인데 오랜 세월 속에 글씨가 산화되었고, 세 번째 기념비는 2007년에 안도현 인민 정부가 세운 ‘내두산 항일 밀영 기념비’이다. 기념비 앞면에는 “길림성 문화 유물 보호 단위 내두산 항일 밀영 길림성 인민 정부 2007년 5월 31일 공포 안도현 인민 정부 세움”이라는 붉은 글이 한글과 중문으로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내두산 항일 밀영[1935년 겨울부터 1936년 3월]에는 동북 인민 혁명군 제2군 군부, 제2련대 본부, 내두촌 농민 위원회, 병기 공장, 피복 공장, 병원 등이 포함되여 있다. 군장 왕덕태가 동북 인민 혁명군 제2군을 거느리고 내두산 항일 밀영을 창립함과 동시에 각종 형식의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인민 군중의 지지하에 유격전을 적극적으로 벌려 적들에게 심중한 타격을 안겨주었다. 밀영 주위 20메터 이내는 중점 보호 구역이다.”라는 글이 역시 한글과 중문으로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흑룡강성의 항일 열사 기념물

해림시(海林市) 산시진(山市鎭) 도남촌(道南村)에는 김좌진(金佐鎭)이 동포들의 생활 안정을 목표로 정착하여 정미소를 운영하다가 순국한 곳에 1999년 그의 집과 동상, 정미소를 복원하였으며, 안내판과 표지석도 설치하였다. 2011년에는 주변지역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현지 주민들이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해림시 철남가 해랑로에는 2005년 김좌진 장군 기념 사업회가 해림시에서 기부한 부지에, 김좌진을 비롯한 항일투사들의 활동과 한인들의 이주 역사,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는 16,800㎡ 규모로 건립한 한중 우의 공원이 있다.

밀산시 서대림자 굉량촌에는 1933년 9월 주덕해(朱德海)와 함께 항일 활동을 전개하다 피살되었던 사회주의 운동가들을 추모하기 위해, 1992년 6월 서대림자 홍량촌 어구에 윤낙범·태동식·이종근·오복 등의 무덤과 '혁명 열사(革命烈士) 영수 부해(永垂不朽)'라고 새겨진 묘비와 석조 기념물이 있다.

밀산시 흥개진 흥농촌 뒷산에는 1911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로부터 5만 달러를 지원 받아 토지를 매입해 5백여 가구 2천명의 마을을 만들고 동명학교가 설립된 곳에 2009년 9월 밀산시 인민 정부의 이름으로 세워진 ‘십리와 항일 투쟁 유적지 기념비’가 있다. 1911년 2월 안창호·안정근 등 신민회 지도자들이 십리와에 와서 기지 건설을 둘러보았고, 1913년에는 홍범도 부대가 십리와에서 3년간 주둔하면서 기지 건설에 불후의 공훈을 세웠다.

목단강시목단강변에는 1938년 10월 일본군과 싸우다 목단강에 투신한 동북 항일연군 소속 조선족·한족 출신의 여자 대원들을 기리기 위해 1988년 8월 조성된 ‘팔녀 투강비’가 있다.

가목사시(佳木斯市) 탕원현(湯原縣) 학립진에는 1985년 8월 가목사시 탕원현 정부가 1920년대 후반 탕원현에서 항일 투쟁 속에서 희생된 12열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배치운 등 12열사 희생지 기념비’가 있다. 탕원현 문물 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하얼빈시하얼빈역 구내에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던 곳에 표식이 되어 있다. 2006년 7월 하얼빈시 도리구 안승가 85호에 개관한 ‘하얼빈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있고, 2014년 1월에는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요령성의 항일 열사 기념물

본계시 환인현(桓仁縣) 보락보진(普樂堡鎭) 남괴마자에 1912년 윤희순(尹熙順)이 독립운동가 양성을 위해 설립한 ‘노학당’을 기념하기 위해 2002년 8월 세운 ‘노학당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무순시(撫順市) 신빈현(新賓縣) 왕청문 협피구 강남촌에는 1920~1930년대 만주에서 활동했던 조선 혁명군 사령관 양세봉(梁世奉)을 기리기 위해 만든 흉상 ‘항일 명장 양세봉’이 세워져 있다. 1995년 8월 해방 50주년을 맞이하여 신빈현의 조선족 기업가 협회를 비롯한 많은 조선족 유관 단체들이 모금하여 양세봉의 흉상을 정의부(正義府) 본부였던 왕청문 소학교(旺淸門小學校) 교정 내에 건립하였다. 2008년 학교가 한족에게 팔리면서 양세봉 흉상은 2009년에 강남촌 협피구로 이전하였다.

대련시(大連市) 여순구구(旅順口區) 황하로 북일항에는 안중근신채호(申采浩)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재판을 받았던 옛 여순 관동 지방 법원이 있다. 1987년 여순구구 문물 중점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는 대련시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1991년 여순관동지방법원구지진열관 건립이 계획되었으며, 2003년 8월 ‘여순 일본 관동 법원 구지진열관’이 조성되었다. 2013년 독립기념관의 협조로 한국인 관람객들을 위해 한글과 중국어가 병기된 전시 패널 설명문을 설치하였다.

해성시(海城市) 묘관둔(苗官屯) 북산(北山)에는 항일 여성 운동가 윤희순의 활동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윤희순 기념비’가 있다. 1994년 윤희순의 유해를 국내로 이장한 뒤, 그 자리에 윤희순과 생전에 친분이 두터웠던 현지 중국인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현재 중국인 갈씨 후손들이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다.

관전현(寬甸縣) 보달원진(普達院鎮) 방취구(芳翠溝)에는 대표적인 의병장 유인석(柳麟錫)이 1914년부터 정착하여 1915년 1월 서거하기까지 생활했던 지역에 관전현 정부가 1994년 5월에 ‘의암 유인석 말년 자정처’라 새겨진 비를 설립하였다. 이외에도 신빈현 평성산진에는 2003년 의암기념사업회와 신빈현 평정산진 정부에서 공동으로 조성한 ‘의암 기념원’이 들어서있다. 2010년 한국독립 기념관의 지원을 받아 주변을 정화하는 한편 기념동판을 새로 제작하여 부착하였다.

관전현 청산구향(青山溝鄉) 구대구촌(舊大久村) 왼쪽 산비탈에는 의병장이자 서간도지역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이진룡(李鎭龍) 의열비(義烈碑)’와 그 옆에 부인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청산구 촌민들은 1919년 3월 이진룡과 우씨(禹氏) 부인의 사랑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해 의열비와 우씨부인 묘비를 세운 것이다. 1977년 환인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이진룡 의열비는 산비탈 위로 옮겨졌고, 부인 묘비는 1991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 설치되었다. 2008년 한국독립 기념관에서 이진룡의 의열비를 부인 묘비가 있는 곳으로 이전하였다.

무순시신빈현 항일 열사 능원 내에는 신빈현 정부가 제작·설치한 1930년대 남만항일 유격대의 대표적 인물인 이홍광(李紅光)의 흉상이 있다. 이홍광은 1934년 1만 군경이 동절기 ‘대토벌’을 진행하자 이홍광은 흥경(興京)·환인(桓仁) 등지에서 적들과 무수히 많은 격전을 벌여 큰 공을 세웠으나, 1935년 3월 환인현 묘령에서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참고문헌
  • 김창순, 「중공이 밝힌 '한족 동북 항일 열사'의 의미」(『북한 학보』 11, 1987)
  • 「내두산 항일 밀영을 찾아」(『길림 신문』, 2015.2.2.)
  • 독립 기념관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http://oversea.i815.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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