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韓相浩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철혈 광복단 단원 |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
| 수학 시기/일시 | 미상 |
| 활동 시기/일시 | 미상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9월 |
| 몰년 시기/일시 | 1921년 8월 25일 |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 출생지 | 함경북도 경성(鏡城) |
| 거주|이주지 | 간도 |
| 학교|수학지 | 길림성 용정 |
| 활동지 | 길림성 화룡현 |
| 활동지 | 길림성 용정촌 동량어구 |
일제 강점기 간도(間島)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한상호(韓相浩)[1899~1921]는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신이다. 어려서 간도로 이주하여 명동(明東) 중학교를 졸업하고 와룡(臥龍) 소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19년 3·13 만세 운동 이후 윤준희(尹俊熙)·임국정(林國楨)·최이붕(崔以鵬)[최계립] 등과 함께 철혈 광복단(鐵血光復團)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19년 9월초 철혈 광복단 핵심 간부인 김하석(金夏錫)의 지시에 따라 그와 윤준희·임국정·최이붕 등은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일거에 획득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와 동지들은 용정(龍井)의 조선 은행 출장소의 현금을 탈취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은행 출장소 사무원인 전홍섭(全弘燮)을 포섭하여 현금 수송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마침내 1920년 1월 그는 윤준희·임국정·최이붕·박응세·김준 등 5인과 함께 조선 은행 회령(會寧) 지점에서 용정 출장소로 운반 중인 현금 수송대를 화룡현(和龍縣) 동양리(東陽里)에서 기습, 호송 경찰을 사살하고 현금을 탈취했다. 이른바 ‘15만원 탈취 사건’인 것이다. 거사 후 한상호는 동지들과 함께 간도를 탈출해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 신한촌(新韓村)으로 가서 체코슬로바키아제 무기를 다량 구입하여 북로 군정서(北路軍政署)에 제공했다.
1920년 12월 한상호와 윤준희·임국정은 일본 경찰의 밀정 엄인섭(嚴仁燮)의 밀고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한상호는 일본 헌병대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동지들과 함께 청진(淸津) 형무소로 압송되었다. 함흥 지방 법원 청진 지청과 경성 복심 법원에서 각각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21년 8월 25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윤준희·임국정과 함께 사행 집행을 당해 순국 하였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90년 용정 3·13 기념사업회에서는 15만원 탈취 사건의 현장인 동양리 입구에 '탈취 15만원 사건 유지(奪取十五萬元事件遺址)'라는 기념비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