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희

한자 韓敬禧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일제 강점기 종교인|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기독교 목사|동명학교 교장
출생 시기/일시 1881년 11월 5일
수학 시기/일시 1914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24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33년
몰년 시기/일시 1935년 1월 4일
추모 시기/일시 1996년
출생지 평안북도 용천
학교|수학지 평양
활동지 길림성 유하현 삼원보
활동지 길림성 유하현 삼원보
활동지 밀산현, 호림현, 요하현 등
정의

일제 강점기 길림성 유하현 삼원보를 중심으로 개신교 포교와 민족 교육 활동을 전개한 종교인이자 항일 운동가.

활동 사항

한경희는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에서 태어났다. 1914년에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1921년 8월 기독교 목사가 되었으며, 유하현(柳河縣)삼원보(三源堡) 교회를 비롯하여 남만주 지역에 여러 교회를 설립하였다.

1924년 8월 한경희는 삼원보에 있는 정의부(正義府) 계통 학교인 동명학교(東明學校) 교장에 취임하여 1928년 6월[음력]까지 역임하였다. 교장으로 있으면서 교과서 배포 등 학생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하다 1929년 1월경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신의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 사이에 맏아들이 살해 당하는 등의 시련을 겪기도 했다.

한경희는 출옥 후 당시 시무하고 있던 창성 교회(昌成敎會)를 떠나 1933년 밀산(密山)·호림(虎林)·요하(饒河) 등 여러 현(縣)의 10여 개 교회의 담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주위에서는 이 지역이 오지이고 비적(匪賊)이 많아 위험하다고 만류하기도 하였으나, 선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호림 지방에서 전도 활동을 하던 중인 1935년 1월 비적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상훈과 추모

한경희는 오늘날 기독교계에서는 당시 이곳에서의 선교 활동이 북만 노회(北滿老會)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로 인해 ‘피를 흘린 순교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편,『독립운동사』4 (독립 유공자 사업 기금 운용 위원회, 1972)
  • 동북 조선 민족 교육 과학 연구소, 『중국 조선족 학교지』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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