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崔興植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요령성 대련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한인 애국단 단원|대련 의거 |
| 출생 시기/일시 | 1909년 |
| 수학 시기/일시 | 미상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5월 |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9년 |
| 출생지 | 경성[서울] 광희정 1정목 14번지 |
| 거주|이주지 | 상해 |
| 학교|수학지 | 한성(서울) |
| 활동지 | 상해 |
| 활동지 | 요령성 대련시 |
일제 강점기 때 한인 애국단에 가입하여 대련 의거를 시도한 독립운동가.
아버지 최한조(崔漢朝)와 어머니 나씨(羅氏)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은 팔경(八慶)이다.
최흥식(崔興植)[1909~1945]은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수하동 공립 보통 학교에서 수학하였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14세에 학업을 중단하였다. 인쇄소 견습생으로 취직하여 생계를 꾸렸지만, 도저히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15세 이후 5년 동안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갖은 고생과 경험을 통해 위대한 뜻을 품고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1931년 중국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취직해 있던 종품 공사(鯼品公司)에 직원으로 취직했다.
1932년 2월, 김구(金九)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했다. 이때 같은 단원 유상근(柳相根)과 함께 김구에게서 특별한 임무를 받았다. 그것은 이른바 ‘대련 의거(大連義擧)’였다. 이는 일본의 만주 침략 조사를 위해 대련에 오는 국제 연맹리튼(Litton) 조사단을 영접하러 나올 일본의 관동군 사령관·관동 청장·남만 철도 총재 등 침략 원흉을 폭살하려는 계획이었다.
최흥식은 1932년 4월 1일 특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먼저 대련으로 갔다. 대련에 도착한 최흥식은 조선인 어부 조합 숙소 김정순(金正順)의 방을 거점으로 비밀리에 여순(旅順), 대련의 경비 상황과 봉천(奉天), 장춘(長春), 하얼빈(哈爾濱) 등지에 잠행하여 각지의 경비를 상세히 조사하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5월 중순 최흥식이 대련 우체국에서 김구에게 발송한 비밀 전문이 단서가 되어, 일본 경찰에 동지들과 함께 체포하면서 ‘대련 의거’는 실패하고 말았다. 최흥식은 관동청 재판소(關東廳裁判所)에서 징역 10년을 받고 여순 감옥에서 복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