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혁명당

한자 朝鮮 革命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요령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기관 단체
관련인물/단체 이호원|이탁|국민부|조선 혁명군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9년 12월 20일
발생|시작 장소 요령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
정의

1929년 12월 20일 요령성 신빈현에서 창건된 독립운동 정당.

역사적 배경

1929년 4월 1일 남만 지역 한인 사회의 자치 기관으로 국민부(國民府)가 탄생되었다. 국민부 산하에는 독립군 조직으로 조선 혁명군이 설립되었다. 1929년 12월 20일 민족 유일당 조직 동맹(民族唯一黨組織同盟)이 조선 혁명당으로 개편되었다.

경과

조선 혁명당은 중앙 당부에 7부 3위원회를 설치하고 중앙 당부를 국민부 소재지인 신빈현(新賓縣) 왕청문(旺淸門)에 두었다. 길림성(吉林省)과 흑룡강성(黑龍江省)에는 ‘길흑 특별 위원회(吉黑特別委員會)’를 두어 당 중앙에서 관할하였다. 지부 조직으로 각 현에 현 당부를 두고, 현 당부 아래 말단 조직으로 당 지부를 설립하였다. 창립 당시 당원은 800여 명이었으나, 3,500여 명 가량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혁명당은 철저한 비밀 조직으로서 ‘이당치국(以黨治國)’의 원칙에 따라 국민부조선 혁명군을 영도하였다. 또한『전위보(前衛報)』와 『대동보(大同報)』 등의 신문을 발간하였다. 『조선 혁명(朝鮮革命)』잡지도 발간하였다. 조선 혁명당은 항일 투쟁은 물론 계급 투쟁과 반봉건적 성격을 띠는 여러 가지 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활동은 주로 조선 혁명군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변천

조선 혁명당은 1930년 8월 8일 제1회 중앙 집행 위원회를 계기로 국민부의 반대파와 옹호파로 분열되었다. 조선 혁명당은 1932년 1월 중순 시국 대책 회의를 개최하다가 이호원(李浩源) 등 10여 명의 핵심 간부들이 체포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1932년 4월 말부터 조선 혁명당조선 혁명군은 당취오(唐聚五)가 이끄는 ‘요령 민중 자위군’과 연합하여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1934년 말 조선 혁명당은 국내에 ‘조선내 공작 위원회’를 설립하였다.

결과

1935년 7월 4일 조선 혁명당의열단(義烈團)·한국 독립당(韓國獨立黨)·신한 독립당(新韓獨立黨)·대한 독립당(大韓獨立黨) 등 5개 단체가 참여한 민족 혁명당을 결속하였다.

의의와 평가

남만주 지역의 ‘민족 유일당’적 성격 띤 조선 혁명당은 1930년대 후반까지 남만주 지방에서 국민부조선 혁명군을 영도하며 다양한 형태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참고문헌
  • 장세윤, 『재만 조선혁명당의 민족 해방 운동 연구』(성균관대 박사 학위 논문, 1997)
  • 장세윤, 「재만 조선혁명당의 조직과 민족 해방 운동」(『사림』18, 수선사학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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