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도선

한자 曺道先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동성향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안중근 의거
출생 시기/일시 1879년
활동 시기/일시 1909년
추모 시기/일시 1962년
출생지 함경남도 흥원
거주|이주지 러시아이르쿠츠크
거주|이주지 하얼빈
활동지 채가구
정의

일제 강점기 하얼빈에서 진행된 안중근 의거에 가담한 함경남도 흥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조도선(曺道先)[1879~?]은 함경남도 홍원 출신이다. 1895년 러시아로 건너가 이르쿠츠크 등지에서 세탁업, 러시아어 통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하얼빈[哈爾濱]으로 갔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대무대신 코코프체프와 회견하기기 위해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기회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자 결심했다. 그리하여 유승렬(劉承烈)의 집에서 안중근, 우덕순(禹德淳), 조도선(曺道先), 김성화(金成華), 탁공규(卓公奎), 유동하(劉東夏) 등과 함께 7인 동맹을 결성하고 이토 히로부미 암살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10월 21일 안중근우덕순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했는데, 중간에 러시아어가 능통한 유동하가 통역으로 참여했다. 10월 23일 러시아어에 능통한 조도선도 합류하여 4인은 김성백(金成伯)의 집에서 거사계획을 상의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24일 유동하를 연락책으로 삼아 하얼빈에 남기고, 조도선안중근, 우덕순과 함께 채가구역(蔡家溝驛)으로 이동하여 의거를 실행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보다 치밀하게 의거를 준비하고자 25일 채가구와 하얼빈, 두 곳에서 의거를 준비하기로 했다. 이에 안중근은 혼자 하얼빈으로 돌아와 거사를 준비했다.

당시 조도선우덕순이 묵었던 곳은 채가구역 내의 지하 찻집이었다. 위쪽은 채가구역의 플랫폼으로 연결되어 있어 의거를 실행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25일 저녁부터 숙소 밖이 소란스러워 조도선이 그 사정을 알아보았는데, ‘일본 대신이 오므로 그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26일 아침 조도선우덕순은 이토 히로부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기차가 채가구역에 도착하여 약 2분 정도 정차하였으나, 러시아 병사들이 채가구역의 플랫폼을 통제하는 바람에 이들의 계획은 실패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기회를 놓친 조도선우덕순은 지하 찻집에서 러시아 병사에게 체포되었다.

조도선은 1909년 11월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 등과 함께 여순(旅順) 감옥으로 이송되어 수감되었다. 1910년 2월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독립운동사 자료집』11 (국가 보훈처, 1976)
  • 독립유공자공훈록 편찬위원회,『독립 유공자 공훈록』7-8 (국가 보훈처, 1990)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한국학 중앙연구원, 1991)
  • 윤병석, 『1910년대 국외 항일운동Ⅰ-만주/러시아』(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09)
  • 신운용, 『안중근과 한국 근대사』(채륜, 2009)
  • 안중근 평화 연구원, 『안중근 자료집』(채륜, 2014)
  • 홍일교, 「우덕순의 하얼빈 의거와 제천 의병」(『지역 문화 연구』11, 세명 대학교 지역 문화 연구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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