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李華林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여 |
| 대표경력 | 한인 애국단 단원|윤봉길 의거|조선 의용대 부녀대(婦女隊) 부대장 |
| 출생 시기/일시 | 1905년 1월 6일 |
| 수학 시기/일시 | 미상 |
| 수학 시기/일시 | 미상 |
| 수학 시기/일시 | 1945년 1월 |
| 수학 시기/일시 | 1955년 9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 |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11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9년 |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 |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4월 |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11월 |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6월 |
| 활동 시기/일시 | 1978년~ |
| 저서 | 1995년 |
| 몰년 시기/일시 | 1999년 2월 10일 |
|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시 경창리 |
| 거주|이주지 | 상해 |
| 학교|수학지 | 평안남도 평양부 |
| 학교|수학지 | 평안남도 평양부 |
| 학교|수학지 | 섬서성 연안 |
| 학교|수학지 | 북경 |
| 활동지 | 평양 |
| 활동지 | 상해 |
| 활동지 | 중국 광주 |
| 활동지 | 남경 |
| 활동지 | 무한시 |
| 활동지 | 계림 |
| 활동지 | 태항산|연안 |
| 활동지 | 북경 |
| 활동지 | 평양 |
| 활동지 | 대련시 |
| 활동지 | 장춘시 |
일제 강점기 한인 애국단과 조선 의용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화림(李華林)[1905~1999]은 1905년 1월 6일 평안남도 평양시 경창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평양 소재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숭현 소학교와 숭의 여자 중학 유치원 사범반에서 수학했다. 이 무렵 평양의 학생들로 조직된 역사 문학 연구회에서 활동했으며, 이를 계기로 1927년 조선 공산당에 입당했다. 이후 1929년까지 유치원과 소학교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정주, 안주, 해주 등지에서 조직 사업을 했다.
1930년 상해로 망명하여 김두봉(金枓奉)을 만나 그의 소개로 1931년 김구가 이끄는 한인 애국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면서, 윤봉길의 상해 의거 등을 지원했다. 1932년 광주(廣州)로 가서 중산 대학(中山大學) 부속 병원 견습 간호사로 재직하면서 진광화(陳光華) 등과 교류했다.
1935년 늦가을 광주에 온 윤세주(尹世胄)를 만나 조선 민족 혁명당에 가입하고, 이듬해 남경(南京)으로 가서 당의 부녀국에서 의료 보건 사업의 책임을 맡았다. 당이 1937년 11월에 결성된 조선 민족 전선 연맹에 참여하자 이에 소속되었고, 중일 전쟁 발발 후 중경(重慶)으로 이동하여 활동했다.
조선 의용대가 창설되자, 1939년 계림(桂林)으로 파견되어 조선 의용대 부녀대(婦女隊)의 부대장을 맡았다. 1941년 조선 의용대를 따라 화북(華北)팔로군 근거지인 태항산(太行山)으로 이동하였다. 1942년 화북 조선 독립 동맹에 소속되어 태항산 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에 참가했다. 1944년 4월 연안(延安)으로 들어가 화북 조선 독립 동맹 본부에서 활동했다.
1945년 1월에는 연안의 중국 의과 대학에 입학하였고, 해방이 되자 1946년 11월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졸업 후 중국 의과 대학 제1 분교[현 연변대학 의과 대학]에 배치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조선 인민군 제6 군단 소속으로 참전했다. 1955년 9월 중국 공산당 중앙 고급 당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연변조선족자치주 위생국 부국장 등을 지냈다.
문화대혁명 때 반혁명 분자로 몰려 박해를 받기도 했다. 1978년 대련시(大連市) 정부 시찰실의 시찰원으로 임명된 후 1984년 퇴직할 때까지 시 정치 협상 회의 상무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87년 대련시 조선족 노인 협회의 명예 회장, 1988년 장춘시 조선족 사회 과학 일군협회의 고문으로 초빙되었다. 1999년 2월 10일 대련시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전재산은 대련시 조선족 학교에 기부되었다.
1995년 이화림이 자신의 인생을 구술하고 이를 정리하여 엮은 회고록 『정도(征途)』[중국어판]가 요령인민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가 사망한 후 한국어로 번역되어 2012년 『머나먼 려정』 (민족 출판사, 북경)과 2015년 『이화림 회고록』(차이나 하우스, 서울)으로 각각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