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룡

한자 李鎭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의병|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의병장
출생 시기/일시 1879년
몰년 시기/일시 1918년
출생지 황해도 평산군 주암면
거주|이주지 관전현 청산구 은광자촌
기념원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청산구진 은광자촌
정의

일제 강점기 동북 3성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가계

이진룡의 자는 석대(錫大), 운서(雲瑞)이고 호는 기천(己千)이다. 아버지는 이영배(李英培), 어머니는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이진룡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다.

활동 사항

이진룡(李鎭龍)는 1879년 황해도 평산군 주암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밀양 공립 보통학교와 동화 중학교를 거쳐, 서울의 오성 중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05년 을사 늑약이 체결되자 국권 회복을 위해 박정빈(朴正彬)·조맹선(趙孟善)·한정만(韓貞萬) 등과 함께 애국 청년들을 규합, 평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1911년까지 황해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며 수차례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국내에서 의병 운동이 불가능해지자, 1911년 10월 조맹선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이때 가족을 관전현(寬甸縣) 청산구(靑山溝) 은광자촌(銀礦子村)으로 이주시켰다. 이곳을 중심으로 만주 각지에 산재한 한국 이주민들을 규합, 항일 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국내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군자금 모금과 군사 훈련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만주에 분산되어 있던 독립운동 단체를 규합하여 국내 침공을 감행하기 위한 대규모 조직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일본 밀정의 밀고로 관전현에서 붙잡혀 여순(旅順) 감옥으로 압송되었다. 1918년 평양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해 순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부인 우씨(禹氏)도 따라서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1919년 이진룡이 평양 감옥에서 순국하자 만주에 있던 가족과 독립운동가들이 돈을 내어 관전현에 ‘이진룡 의열비’를 세웠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2012년 7월 15일 현지 지방 정부의 비준을 받은 후손들에 의해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청산구진 은광자촌에 “이진룡 기념원”을 준공하였다.

참고문헌
  • 김영범, 『독립운동사 자료집』1(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0)
  • 이상봉, 『이진룡 의병장 자료 전집』(국학 자료원, 2005)
  • 김주용·박환·조재곤·한시준·한철호, 『국외 항일 유적지』-한국 독립운동의 역사 59(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09)
  • 김양, 「우병렬과 이진룡의 의병 운동과 항일 독립운동 재조명」(『의암학 연구』 4, 2007)
  • 「항일 의병장 이진룡 선생 기념원 중(中)서 개관」(『세계 일보』, 201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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