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근

한자 柳相根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한국 교민단 의경 대원|한인 애국단 단원|대련 의거
출생 시기/일시 1910년
활동 시기/일시 1931년
활동 시기/일시 1932년
몰년 시기/일시 1945년 8월 14일
추모 시기/일시 1968년
추모 시기/일시 2009년
출생지 강원도 통천
거주|이주지 길림성 연길현 이도구
거주|이주지 길림성 용정
학교|수학지 강원도 통천
학교|수학지 길림성 용정
활동지 상해
활동지 요령성 대련
기념관 대련시
정의

일제 강점기 때 한인 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하여 대련(大連) 의거(義擧)에 가담한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로 부친은 유춘기(柳春基), 모친은 김씨(金氏)이다.

활동 사항

유상근(柳相根)[1910~1945]은 1910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났다. 1918년 통천 보통 학교에 입학하여 재학 중 가족과 함께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이도구(二道溝)로 이주하였다. 다시 봉밀구(蜂密溝) 필산촌(畢山村)으로, 16세에 또다시 용정촌(龍井村)으로 옮겼고 이곳의 동명 중학교(東興學校)에 입학해 공부하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야학을 설치하여 동포들의 계몽 사업에 힘썼다.

이후 화룡현(和龍縣), 하얼빈(哈爾濱 ) 등을 거쳐 1930년 상해(上海)로 가서 김구(金九)를 만나 그의 주선으로 전차 회사의 검표원으로 근무했다. 또한 그는 인삼 장사를 하며 광동(廣東)· 홍콩 등지를 두루 살폈다. 1931년 김구의 지시로 다시 상해로 돌아와 한국 교민단(韓國僑民團) 의경대(義警隊)에 가입하여 1932년 2월 초까지 활동했다.

1932년 2월 말,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에 가입했다. 이때 같은 단원 최흥식(崔興植)과 함께 김구에게서 특별한 임무를 받았다. 그것이 바로 이른바 ‘대련 의거’였다. 이는 일본의 만주 침략 조사를 위해 대련에 오는 국제 연맹리튼(Litton) 조사단을 영접하러 나올 일본의 관동군 사령관·관동 청장·남만 철도 총재 등 침략 원흉을 폭살하려는 계획이었다.

유상근은 4월 27일 상해에서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사용한 것과 같은 수통형 폭탄을 김구에게서 받아서 대련으로 출발했다. 5월 4일 대련에 도착한 유상근은, 먼저 와있던 최흥식과 만나 거사를 논의하는 한편, 독자적으로 하얼빈에 가서 역의 주변 경계 상황이나 경호 상황을 확인하는 등 철저히 준비했다.

그러나 거사 준비 과정에서 김구와 주고 받은 전보가 발각되어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관동청 재판소(關東廳裁判所)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여순(旅順) 감옥에서 복역 중 광복을 하루 앞두고 살해 당해 순국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한 민국 건국 훈장 국민장이 추서 되었다. 대련시 여순 일아 감옥 구지 박물관(旅順日俄監獄舊址博物館)의 국제 지사 전시관 내 유상근의 흉상과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참고문헌
  • 「大連 炸彈事件의 追憶」(『한민』3, 1936. 5. 25)
  • 김구 저 엄항섭 편, 『도왜실기(屠倭實記)』(국제 문화 협회, 1946)
  •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독립운동사』4 (독립 유공자 사업 기금 운용 위원회, 1972)
  • 독립 유공자 공훈록 편찬 위원회,『독립 유공자 공훈록』7-8 (국가 보훈처, 1990)
  • 조범래, 『의열 투쟁Ⅱ-한인 애국단』(독립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09)
  • 박환,「1930년대 초 유상근, 최흥식의 대련 의거」(『만주 지역 한인 민족 운동의 재발견』, 국학 자료원, 2014)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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