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劉東夏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안중근 의거 |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
| 수학 시기/일시 | 1902년 ~ |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0월 |
| 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 몰년 시기/일시 | 1918년 |
| 추모 시기/일시 | 1988년 |
| 출생지 | 함경남도 덕원 |
| 거주|이주지 | 러시아보그라니츠나야 |
| 학교|수학지 | 러시아보그라니츠나야 |
| 활동지 | 하얼빈 |
| 활동지 | 러시아하바로브스크 |
일제 강점기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에 가담했던 독립운동가.
이명은 강로(江露)이고, 부친은 유승렬(劉承烈)이다.
유동하(劉東夏)[1892~1918]는 함경남도 덕원 출신이다. 1902년 러시아의 국경 지대인 보그라니츠나야로 옮겨 그곳에서 러시아인 철도 고등 중학교를 졸업했다. 1905년을 전후해 부친이 독립운동가들과 자주 교류함에 따라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유동하는 1909년 10월 중순 『철로보(鐵路報)』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재무 대신 코코프체프와 회견하기 위해 10월 하순 하얼빈[哈爾濱]으로 오게 된다는 기사가 실리자 이를 부친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러시아코트지로의 자택에서 부친 유승렬, 안중근(安重根), 우덕순(禹德淳), 조도선(曺道先), 김성화(金成華), 탁공규(卓公奎) 등과 함께 7인 동맹을 결성하고 이토 히로부미 암살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10월 21일 안중근과 우덕순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했는데, 중간에 러시아어가 능통한 유동하가 통역으로 참여했다. 당시 유동하의 나이는 18세에 불과했다. 같은 달 23일 조도선이 합류하여 4인은 김성백(金成伯)의 집에서 거사 계획을 상의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24일 유동하는 연락책으로 하얼빈에 남고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은 채가구역(蔡家溝驛)으로 이동하여 의거를 실행할 계획을 세운다. 이때 유동하는 이토 히로부미가 26일 아침 하얼빈에 도착할 예정임을 이들에게 알렸다. 그래서 의거의 만전을 기하기 위해 25일 채가구와 하얼빈 두 곳에서 의거를 준비하기로 했다.
이에 안중근은 혼자 하얼빈으로 돌아와 거사를 준비했다. 26일 아침, 유동하는 안중근을 하얼빈역으로 안내한 후 헤어진다. 마침내 안중근은 이토 암살에 성공했다. 유동하는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1909년 11월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등과 함께 여순(旅順) 감옥으로 이송되어, 1910년 2월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유동하는 1918년 가을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던 애국 청년들과 함께 볼셰비키 혁명군에 가담하여 백계 노군(白系露軍)의 축출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이를 가장한 일본군에 붙잡혀 싸말리아강으로 끌려가 총살되었다고 한다.
198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