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五龍齋 |
|---|---|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지신진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서당 |
|---|---|
| 설립자 | 남씨 가문|도천 남종규 |
| 개교 시기/일시 | 1901년 |
| 최초 설립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지신진 |
일제 강점기 용정의 지신진 지역에 세워진 조선인 서당.
오룡재는 당시 중영촌의 조선인 자녀들에게 한문을 가르침으로써 교육시키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화룡현 명동 지역 중영촌(中英村)의 오룡재는 1901년에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당시 명동으로 이주해 온 다섯 가문 가운데 남씨 가문에 의해 설립되었다. 남씨 가문은 도천남종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문인데 이들은 대표적인 ‘관북 오현’의 후예들이다.
특히 이 서재의 이름은 당시 명동에 설립된 다른 두 서재인 규암재, 소암재와 달리 관북 오현의 직접 제자인 남오룡재의 호를 따서 달았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남씨 가문의 오룡재는 매우 깊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룡재 역시 1908년 규암재, 소암재와 함께 명동 서숙으로 통합되고 명동 서숙은 그 후 명동학교로 발전하여 북간도 교육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게 된다.
오룡재 역시 주로 한문을 중심으로 가르쳤던 만큼 그 주요 내용은 강독, 제술, 습자 등이었다. 따라서 『맹자』나 『천자문』 등 교과 내용을 중심으로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