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寧安縣 素來 學校 |
|---|---|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개교 시기/일시 | 1928년 |
|---|---|
| 폐교 시기/일시 | 1933년 3월 말 |
| 최초 설립지 | 흑룡강성 목단강 지구 영안현 어복촌 |
| 현 소재지 |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팔도하자 어복촌 |
일제 강점기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팔도하자[옛 흑룡강성 목단강 지구 영안현] 어복촌에 세워진 조선인 학교.
영안현 소래 학교는 1928년에 설립되었다. 당시 원종교 교주인 김중건[도호 소래, 법명 마루진]이 1928년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팔도하자[옛 흑룡강성 목단강 지구 영안현] 어복촌에 설립한 종교계 학교이다.
김중건은 농장·정부·학교의 삼위일체의 이상촌을 건설하고자 흑룡강성으로 건너갔다. 김중건은 1928년에 영안현 팔도하자에 이르러 그곳을 어복촌(魚腹村)이라 명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이운·김대용·장제민·신흘·조운산 등 인사들과 함께 소래 농장과 정부를 세우고 학교도 설립하였다. 그 학교가 바로 소래 학교 또는 원종교 소래 학교이다.
하지만 영안현 소래 학교는 1933년 3월 말에 일본 침략군이 온 마을을 불태워버리는 바람에 폐교되었다. 당시 마을에는 300~400세대의 조선인 농호가 살고 있었다.
영안현 소래 학교의 교과서는 모두 원종교 교주이며 소래 학교 교장인 김중건이 스스로 편찬하였다. 김중건은 어문·역사·수학·자연·천문 등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 교과서를 자체적으로 편찬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교육 대상에 맞게 가르치는 방법”을 모색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조선어의 식자 교수(識字敎授)에서도 종서를 횡서로 고쳐 쓰고 자모음의 결합도 숫자적 조합 방식으로 쉽게 배우고 익히도록 하였다.
영안현 소래 학교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노동과 공부를 결합하도록 하였다. 문화 기초가 높고 총명한 학생들은 반년 사이에 모든 학과목을 마치고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거나 학교 관리 사업을 보조하기도 하였다. 소래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연령을 제한하지 않았으며 남녀 공학을 실시하였다.
영안현 소래 학교의 학생들은 여름에는 집단적으로 농사를 하면서 공부했고 겨울에는 산속에 들어가 사냥을 하거나 숯구이를 하였다. 허약자와 어린 학생들에 한해서는 집짐승을 기르게 하거나 집안일을 시켰다. 이는 김중건의 농장·정부·학교 삼위일체의 이상촌 건설 이념을 몸소 실천에 옮긴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