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新京 幼稚園 |
|---|---|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장춘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유치원 |
|---|---|
| 설립자 | 조선인 기독 교회 |
| 개교 시기/일시 | 1927년 4월 |
| 최초 설립지 | 신경 특별시 |
1927년 4월 조선인 기독 교회가 신경특별시 시내에 조선인 아동을 대상으로 설립한 유치원.
신경 유치원은 조선인 교회의 취지인 민족성과 종교성도 강조하고자 하였지만 조선총독부의 교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식민주의의 침투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신경 유치원은 일제의 신경 총영사관 관할 하에 있었으며 조선인 기독 교회에서 경영하였다.
신경 유치원에는 두 개의 학급이 있었고 매주 수업 시수는 20교시였다. 신경 유치원의 원생 수는 총 35명으로 남아 15명, 여아 20명이었다. 신경 유치원에서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교과서를 사용하였으며 동시에 기독교의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신경 유치원의 연 운영 경비는 750원이었는데 교회 및 교무과에서 전액 부담하였다.
1936년에 이르러 신경 유치원의 원장은 기독교 조선 감리 교회 신학교를 수료한 평안북도 출신 장죽애(張竹愛)였고, 보모는 월덕 여자 고보교(月德女子高普校)를 졸업한 경기부 출신 조화인(趙華仁)였다. 그리고 조수는 이화 보육 신경 보학교(梨花保育新京普學校)를 졸업한 평안북도 출신 전양옥(田陽玉)이었다.
당시 학제는 2년이었고 학급은 2개 있었으며 교사는 조선인 2명이었고 원생은 남아 25명에, 여아 18명으로 총 43명이었다. 당시 연 운영 경비는 1000원이었는데 감리 교회 및 민회에서 부담하였다.
신경 유치원은 조선인 교회에서 운영하였기 때문에 비록 조선 총독부의 교과서를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민회에서 지원함으로써 조선인 아동에게 몰래 조선인으로서의 계몽 교육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