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구 항일 유격 근거지

한자 羅子溝 抗日 遊擊 根據地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유적지
건립 시기/일시 1935년 3월
폐지 시기/일시 1935년
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나자구
정의

1930년대 이후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왕청현(汪淸縣) 나자구(羅子溝) 일대에 있었던 항일 유격 근거지.

개설

1932년 가을 경 동만의 연길(延吉), 화룡(和龍), 왕청(汪淸), 혼춘(琿春) 등 현들은 중공 중앙 위원회의 “북방 회의” 결정과 만주성 위원회 확대 회의 결의에 따라 항일 유격 투쟁을 확대하는 동시에 항일 유격 근거지 건설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건설된 것이 나자구 항일 유격 근거지였다.

변천

나자구 항일 유격 근거지는 원래 왕청 지역의 항일 유격구였다. 1935년 3월 왕청 요영구 회의 후 중공 동만특위와 동북 인민 혁명군 제2군 독립사 제3퇀, 4퇀 그리고 왕청현 요영구, 당수하자, 금창 등지에 있던 왕청, 혼춘 근거지의 군중들이 나자구에 집결하여 나자구 항일 유격 근거지를 건립하였다. 나자구 항일 유격 근거지는 1935년 말까지 존재하였다.

위치

나자구 항일 유격 근거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왕청현 나자구 일대에 있었다. 주요한 유적지들로는 나자구 사도하자의 중공 동만특위가 있던 자리, 하동의 중공 나자구 구위가 있던 자리, 삼도하자와 사도하자의 구국군사충항(史忠恒), 시세영(柴世榮), 공헌영(孔憲榮) 등 부대의 주둔지 터 등이 있다. 그리고 석두하자에는 동북 인민 혁명군 제2군 독립사 제3퇀, 4퇀의 주둔지가 있었다.

의의와 평가

나자구 항일 유격 근거지는 동만의 마지막 근거지 중 하나로, 연변의 항일 유격 투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참고문헌
  • 황민호,「동북 항일 연군의 민족 운동사적 성격」(『한국 항일 민족 운동과 중국』, 국학 자료원, 2001)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2)
  • 「처장즈, 라자구 항일 유격 근거지 창설」(『연변 일보』, 2009.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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