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南極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동창 학교 교장|북일 학교 부교장 |
| 출생 시기/일시 | 1968년 |
| 몰년 시기/일시 | 1920년 10월 17일 |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 출생지 | 함경북도 명천 |
일제 강점기 중국 동북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868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출생하였으며, 길림성(吉林省) 혼춘현(琿春縣)을 근거로 항일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혼춘현 대황구(大荒溝)에서 유백초(柳百草), 양하구(梁河龜) 등과 함께 기독교 계통으로 소학교 과정을 담당하는 동창 학교(東昌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활동하였다.
1917년 1월 이동휘(李東輝), 양하구 등과 함께 동창 학교를 흡수·확대하여 북일 학교(北一學校)를 설립하였다. 북일 학교는 동창 학교가 지닌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1915년 6월경 이동휘 등이 왕청현(汪淸縣) 나자구(羅子溝)에 설립한 독립군 양성 학교인 동림 무관 학교(東林武官學校)의 군사적 전통을 통합하여 설립한 것이었다. 설립 당시 이동휘가 명예 교장에 추대되었고, 양하구가 교장, 김남극은 부교장을 맡았다.
부교장에 취임한 후 주로 북일 학교의 모든 행정 사무를 관장하였다. 설립 후 대황구 서쪽 산기슭에 목재로 8칸의 교사(校舍)를 지어 교실 3개를 확보하였다. 1919년 4월 교장 양하구가 일제 당국에 검거된 뒤 형식적으로는 제2대 교장에 오영선(吳永善)이 선임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교장 역할을 수행하였다. 1920년 10월 17일 경신 참변(庚申慘變)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
1991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