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歸還 同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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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개념용어 | 일제 강점 전후시기에 해외로 이주해 간 동포들의 귀환 현실에 관한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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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5년 8월 15일 |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해외 이주 및 강제 연행으로 해외에 나가 있던 한인 가운데 고국으로 돌아온 동포.
1860년대 이래 만주·연해주 지역으로의 한인 이주와 1902년 이후 미주 지역으로의 한인 이주는 기아와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한 시도였다. 1910년 망국 이후 한인의 해외 이주는 생활 문제 뿐 아니라 정치적 망명 또는 일제의 강제 연행 등이 겹치면서 복잡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특히 강제 연행의 경우, 일본을 비롯하여 중국·만주·시베리아·몽골·대만·동남아시아 각처에 군인·군속·일본군 ‘위안부’·노무자 등으로 일본의 침략 전선이면 어디든 끌려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1945년 일제 패망 당시 해외 한인의 수는 대략 500만 명에 달했다. 이는 당시 한국인의 20%를 차지하는 규모였다.
제국주의 침략 전쟁의 희생자였던 해외 한인은, 포츠담 선언의 제9항에 명시된 바처럼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조국으로 귀환되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해당국의 이해에 따라 인도주의가 망실된 채, 한인은 또다시 유린당해야 했다. 한인의 수가 200만 명이 넘었던 일본에서는 연합군 사령부와 일본의 무책임한 처리에 의해 한인들이 ‘해방 국민’의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무계획한 귀환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230만 명에 달했던 중국에서는 많은 한인들이 재산을 몰수 당한 채 강제 추방되는 등의 횡포를 받아야 했다. 소련군 점령 지역인 사할린에서는 한인의 귀환이 원천 봉쇄되었으며, 일제의 침략 전선에 강제 배치되었던 한인들은 연합국 점령군의 포로나 ‘전범’으로 취급받으며 더욱 가혹한 고난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해방 당시 500만에 달했던 해외 한인 중 돌아온 사람은 300만 명 정도였고, 돌아오지 않거나 못한 사람이 200만 명에 이르렀다. 자료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해방 이후 일본에서는 귀환한 사람이 대략 140만 명, 만주에서 100여 만 명, 중국 대륙에서 10여 만 명, 하와이·대만·오키나와·남태평양 군도 등에서 10여 만 명이 귀환하였다. 그 밖의 지역은 귀환 자체가 밝혀져 있지도 않은 실정이다. 북한으로 귀환한 경우는 실체가 확인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데 이들이 해외에 머물게 되었던 배경이 달랐던 것처럼 돌아오는 것도 각기 달랐다. 일제 침략 전선에 끌려간 강제 연행자들은 세계 각처에 배치되어 있었다. 때문에 이들의 귀환 역시 다양한 지역에 이뤄졌고, 그곳의 사정에 따라 귀환의 양상도 달랐다. 그리고 본인의 의지와 관계 없이 돌아올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귀환’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외국에 이주했던 사람이 조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귀환’은 일제 식민지 통치의 강제와 모순에서 비롯된 해외 이주 및 강제 연행으로 해외에 나가 있던 한인이 해방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일제의 강제에 의해 해외로 나간 이들의 귀환은 일제 식민지 통치의 종결과 함께 마땅히 이뤄져야 했다. 식민지 시기에 폭넓게 형성된 해외 한인 사회는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강제 연행으로 끌려간 경우 뿐 아니라 민족 독립을 위해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세력이 세계 각처에 포진되어 있었고, 오랜 이주의 역사를 바탕으로 중국 동북 지역이나 미주 지역, 소련의 중앙아시아 등지에 해외 한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는 그곳에서 정착의 뿌리를 내린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해방과 더불어 귀환을 희망했다.
일제의 패전과 더불어 해방되었다고 하지만, 국가가 성립된 것은 아니었다. 독립 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채, 해외 한인의 귀환 문제는 한민족의 의지와 달리 주변 열강의 이해에 따라 이뤄지고 있었다. 더욱이 해방 후 남북 분단과 냉전 체제의 현실은 해외 한인의 귀환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소련이나 중국 공산당의 지배 지역과 같은 공산권에서의 귀환은 원천적으로 봉쇄되거나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귀환 문제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국제 사회의 환경에서 결정되어졌다는 점에서,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제의 기류에서 종합적으로 이해되고 규명되어야 하는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