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朝鮮 革命 宣言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문헌/문서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 선언서 |
|---|---|
| 관련인물 | 신채호|김원봉|유자명 |
| 작성 시기/일시 | 1923년 1월 |
의열단은 1919년 11월 만주 길림성(吉林省)에서 김원봉을 단장으로 조직된 항일 독립운동 단체로서, 암살·파괴·폭동 등을 독립운동의 주요 전술로 내걸었다.
이들은 파괴의 다섯 가지 대상을 조선 총독부·동양 척식 회사·매일 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倭賊)의 중요 기관으로 정하고 이를 ‘5파괴(五破壞)’라 하였다. 또한 암살의 일곱 가지 대상을 조선 총독과 고관, 일본 군부 수뇌, 대만 총독, 매국노, 친일파 거두, 적탐[敵探, 밀정], 반민족적 토호열신(土豪劣紳)으로 정하고, 이를 ‘7가살(七可殺)’이라 하였다.
1922년 12월, 의열단 단장 김원봉은 신채호와 함께 상해(上海)에 있는 그들의 폭탄 제조소를 시찰한 후 그에게 의열단원인 무정부주의자 유자명(柳子明)과 함께 선언문을 작성해 달라고 요청 하였다.
선언문은 1개월여의 준비를 거쳐 1923년 1월에 작성 되었으며, 크게 5개 부분, 6,400여 자로 되어 있다. 5개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을 조선의 국호와 정권과 생존을 박탈해간 강도로 규정하고 이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정당한 수단임을 천명하였다. 둘째, 3·1 운동 이후 국내에서 대두된 자치론(自治論), 내정 독립론(內政獨立論), 참정권론 및 문화 운동을 일제와 타협하려는 ‘적’으로 규정하였다. 셋째,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외교론, 독립 전쟁 준비론 등의 독립운동 방략을 비판하였다. 넷째, 일제를 몰아내려는 혁명은 민중 직접 혁명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섯째, ‘조선 혁명’과 관련하여 다섯 가지 파괴와 다섯 가지 건설 목표를 제시하였다.
‘5파괴’의 대상은 이족 통치(異族統治), 특권 계급, 경제 약탈 제도, 사회적 불평균, 노예적 문화 사상으로 설정하였다. ‘5건설’의 목표는 고유적 조선, 자유적 조선 민중, 민중적 조선, 민중적 사회, 민중적 문화라고 표방하였다.
선언문의 내용은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 이념이 혼재되어 있다. 선언문은 외교론, 참정권론, 자치론 등을 모두 비판하고 민중에 의한 직접 혁명론을 주장하였다. 즉 민중을 일깨워 민중에 의한 직접 혁명으로 끊임없는 폭력 투쟁을 전개하는 것만이 일제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고 있다.
반제국주의 노선을 명확히 드러낸 이 선언문은 일제 강점기 내내 의열단원뿐만 아니라 모든 독립운동가와 전체 민족 구성원에게 독립에 대한 확신과 목표를 불어넣은 대표적인 문서로 평가된다. 한용운(韓龍雲)의 「조선 독립의 서」와 함께 일제 강점기 2대 명문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