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 선언서」

한자 大韓 獨立 宣言書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 선언서
관련인물 조소앙 외 38인
작성 시기/일시 1918년 음력 11월
정의

1918년 음력 11월 만주·연해주[현 동북 3성] 등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명망가 39명이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에 맞춰 조국의 독립을 요구한 선언서.

개설

정식 명칭은 「대한 독립 선언서」이다. 1918년 무오년에 선포되었다 하여 「무오 독립 선언서」라고도 한다. 작성자는 조소앙(趙素昻)으로 전해진다. 선언서에 서명한 사람은 김교헌(金敎獻)·김동삼(金東三)·조용은(趙鏞殷)[조소앙]·신규식(申圭植)·정재관(鄭在寬)·여준(呂準)·이범윤(李範允)·박은식(朴殷植)·박찬익(朴贊翼)·이시영(李始榮)·이상룡(李相龍)·윤세복(尹世復)·문창범(文昌範)·이동녕(李東寧)·신채호(申采浩)·허혁(許赫)·이세영(李世永)·유동열(柳東說)·이광(李光)·안정근(安定根)·김좌진(金佐鎭)·김학만(金學滿)·이대위(李大爲)·손일민(孫一民)·최병학(崔炳學)·박용만(朴容萬)·임방(林邦)·김규식(金奎植)·이승만(李承晩)·조욱(曺煜)·김약연(金躍淵)·이종탁(李鍾倬)·이동휘(李東輝)·한흥(韓興)·이탁(李沰)·황상규(黃尙奎)·이봉우(李奉雨)·박성태(朴性泰)·안창호(安昌浩) 등 39명이었다.

구성/내용

선언서의 내용은, 먼저 한국이 완전한 자주 독립국이고 민주의 자립국임을 선포하고, 우리의 영토 즉 한토(韓土)는 완전한 한인의 한토이니 우리의 독립은 민족을 스스로 보호하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지 결코 사사로운 감정으로 보복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또한 일제의 병합은 사기와 강박과 무력 폭행 등의 수단을 동원하여 강제로 한 것이므로 무효이니,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오고 대륙은 대륙으로 회복하라”고 요구하였다.

한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력의 사용도 불사할 것임을 선언하고, 2천만 동포에게는 국민된 본령이 독립임을 명심하여 육탄혈전(肉彈血戰) 즉 맨몸으로라도 결사 항쟁하여 독립을 되찾을 것을 요구하였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 선언서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일제 강제 병합의 무효를 밝히고 무력 항전까지 불사하겠다는 대항 의지, 독립 의지를 공식적으로 선포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선언서 서명자에 당시 명망있는 해외 인사가 거의 망라되어 있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독립운동사』3(독립 유공자 사업 기금 운용 위원회, 1971)
  • 유광렬, 『항일 선언·창의문집(抗日宣言·倡義文集)』(서문당, 1975)
  • 조동걸, 『한국 민족주의의 성립과 독립운동사 연구』(지식 산업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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