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부

한자 顯德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제도 발해의 15부 중 하나인 중경 현덕부
제정 시기/일시 747년∼751년
개정 시기/일시 755년
개정 시기/일시 785년
관할 지역 길림성 화룡현 북고성촌 남동쪽
정의

발해의 15부 중 하나인 중경 현덕부.

제정 경위 및 목적

현덕부(顯德府)는 오경(五京)의 하나인 중경(中京)이 병치되어 중경 현덕부라고 통칭한다. 중경 현덕부는 발해의 두 번째 수도이다. 발해 제3대 문왕(文王)대흠무(大欽茂)[737∼793]가 747∼751년 사이에 이전의 수도였던 돈화 분지(敦化盆地)에서 천도한 곳이다.

문왕은 부왕인 무왕의 대외 정복 정책에서 벗어나 국내 정치 개혁을 추진해 나갔는데, 그 일환으로 천도를 실시하였다. 천도 이유에 대해서는 현덕부 지역의 철을 비롯한 자원과 두도 평원을 중심으로 한 농업 생산력 증대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및 신라와 외교를 펼치는 데 있어서도 유리한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관련 기록

현덕부와 관련해서는 『신당서(新唐書)』 권219, 열전 144, 발해조의 기록을 참고할 수 있다. 발해는 “5경, 15부, 62주를 두었는데, 남쪽 지역을 중경으로 삼고, 현덕부라고 하였다. 노주(盧州)·현주(顯州)·철주(鐵州)·탕주(湯州)·영주(榮州)·흥주(興州) 등 6주를 거느렸다.”고 서술되어 있다.

내용

현덕부의 위치는 길림성(吉林省) 화룡시(和龍市) 서성진(西城鎭) 북고성촌(北古城村)의 서고성(西古城) 지역으로 비정되고 있다. 서고성해란강(海蘭江)의 좌우에 펼쳐진 평야의 서북쪽에 있다. 중경 현덕부의 소속 주(州)로는 노주(盧州)[현재 안도현(安圖縣)]·현주(顯州)·철주(鐵州)·탕주(湯州)[현재 영봉현(靈峰縣)]·영주(榮州)·흥주(興州) 등 6주가 있었으며, 현주의 마포, 노주의 벼, 그리고 철주의 속현(屬縣)인 ‘위성(位城)’의 철은 당나라에까지 알려졌다. 농업, 방직업, 광업 등이 주된 산업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변천

발해의 수도는 755년 무렵 현덕부에서 상경 용천부[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시(寧安市) 동경성(東京城) , 현재 발해진]로, 다시 785년경 동경 용원부[현재 길림성(吉林省) 혼춘시(琿春市) 팔련성(八連城)]로 바뀌었다.

의의와 평가

현덕부발해의 두 번째 수도로 수도였던 기간은 짧았지만, 755년 상경 용천부로 천도한 이후에도 발해의 정치·외교·교육·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상경 용천부와 더불어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신당서(新唐書)』
  • 『아방강역고』
  • 송기호, 『발해 정치사 연구』(일조각, 1995)
  • 여호규, 『고구려성 Ⅰ-압록강 중상류편-』(국방군사연구소, 1998)
  • 송기호, 「만주의 발해·부여 유적 답사 보고」(『한반도와 중국 동북 3성의 역사 문화』, 서울 대학교 출판부, 1999)
  • 한규철, 「발해 5경의 성격과 기능」(『발해 5경과 영역 변천』, 동북아역사재단, 2007)
  • 이용범, 「발해 연구의 회고와 국사」(『한국 사상』7, 1964)
  • 정영진, 「발해의 강역과 오경의 위치」(『한국사론』34, 국사편찬위원회, 2002)
  • 松井等, 「渤海國의 疆域」(『滿洲歷史地理』1, 1913)
  • 津田左右吉, 「渤海考」(『滿鮮地理歷史硏究報告』1, 1915)
  • 鳥山喜一, 「渤海中京考」(『考古學雜誌』24-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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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和田淸, 「渤海國地理考」(『東洋學報』36-4, 1954)
  • 延邊朝鮮族自治州博物館, 「渤海貞孝公主墓發掘淸理簡報」(『社會科學戰線』1982-1, 吉林省社会科学院, 1982)
  • 王承禮, 「唐代渤海貞惠公主墓志和貞孝公主墓志的比較硏究」(『社會科學戰線』1982-1, 吉林省社会科学院,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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