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海城 大屯 土壙墓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요령성 안산시 해성시 대둔촌 |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
| 성격 | 토광묘 |
|---|---|
| 양식 | 토광묘 |
| 크기 | 미상 |
| 조성 시기/일시 | 고조선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53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3년 |
| 소재지 | 요령성 안산시 해성시 대둔진 대둔촌 |
요령성(遼寧省) 안산시(鞍山市) 해성시(海城市) 대둔촌(大屯村)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토광묘.
해성 대둔 토광묘는 요령성 안산시 해성시 대둔촌 서남쪽 강안 충적 대지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토광묘이다. 해성하(海城河) 유역의 물질문화가 기원전 6세기를 기점으로 기존의 지석묘로 대표되는 쌍방 유형(雙房類型)에서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 문화 정가와자 유형(鄭家窪子類型)으로 전환된 것과 관련된 중요 유적이다.
해성 대둔 토광묘는 요령성 안산시 해성시 대둔진 대둔촌 서남쪽 강안의 완사면 충적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1953년 대둔촌의 도기 공장 직원이 마을 부근에서 흙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한(漢)나라 토광묘군이 발견되었다. 이에 즉시 동북 문화국(東北文化局)에서 토광묘에 대한 수습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76호 한나라 토광묘의 부근에서 한나라 유물과는 또 다른 청동기가 출토됨에 따라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해성 대둔 토광묘의 형태와 구조 등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서한(西漢) 토광묘군에 의해 파괴되어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따름이다.
해성 대둔 토광묘에서는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 1점, 청동제 검 손잡이 1점, 청동제 검 손잡이의 일부 부속편 1점이 채집되었다.
해성 대둔 토광묘는 조사 당시 이미 상당 부분 파괴된 상태였기 때문에 유적의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해성 대둔 토광묘는 해성하(海城河)~관둔하(官屯河) 유역은 기원전 9∼7세기 요동 남부의 대표적인 지석묘 문화인 쌍방 유형(雙房類型)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소지역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대석교시(大石橋市)석붕욕(石棚峪) 지석묘, 해성시 석목성(析木城) 지석묘·패루(牌樓) 지석묘가 바로 이 시기의 유적들이다.
그런데 이 일대의 물질문화는 기원전 6세기를 기점으로 쌍방 유형의 유적군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청동기를 부장하고 있는 대둔 토광묘류의 유적군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대둔 토광묘는 묘제와 청동기의 양식을 고려할 때, 심양(瀋陽)에 중심을 두고 있던 십이대영자 문화(十二臺營子文化) 정가와자 유형(鄭家窪子類型)의 유적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대둔 토광묘는 이 일대 물질문화의 변동을 알려 주는 중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대둔 토광묘를 비롯한 이 일대의 청동기 출토 유적을 고조선 유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