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朝鮮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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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지명/시설 |
| 지역 | 요령성 |
| 시대 | 조선/조선 |
| 성격 | 숙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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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연행 사신이 연경(燕京)을 왕래할 때 머물 수 있도록 요동(遼東) 지역에 마련된 숙소.
홍대용(洪大容)의 연행 기록인 「연기(燕記)」에는 조선관의 모습에 대해서 다음과 기록하였다. “매양 온돌방이 엉성하고 찬 까닭에 반드시 다른 사가로 나가 머물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찰원이 모두 허물어지고 황폐한 채 수리를 하지 않고 있는데, 오직 영평부(永平府)의 관사만은 웅장하고 화려하여 금자(金字)의 편액이 걸려 있고, 안팎 뜰의 꽃나무들이 울창하였다. 대개, 들리는 말로는, 황제가 심양으로 거둥하던 도중 여기에 이르러 관사가 많이 파괴된 것을 보고 지부(知府)의 관직을 파면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수리를 유독 잘 하여 매양 사행이 올 때면 관에서 침대와 책상이나 기물들을 갖추어 가지고 나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사행이 사가로 들게 되면 그때야 거두어 가지고 간다고 했다.”
조선관은 조선 후기 연행 사신이 숙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이곳에서 청나라의 문물을 견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