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전국에 걸쳐 5경, 15부, 62주 및 다수의 현을 두었는데, 정리부의 설치 시기는 분명치 않다.
관련 기록
정리부에 대해서는 『신당서(新唐書)』에 기록이 있다. 『신당서』 권219, 열전 144, 북적 발해조에, “읍루의 옛 땅에 정리부를 두고, 정주·반주 등 2주를 거느렸다(挹婁故地爲定理府, 領定·潘二州).”고 하였다.
같은 책 지리지에는 반주를 심주(審州)로 기록하고 있다.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또한 “정리부는 읍루(挹婁)의 옛 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 정주(定州)와 반주(潘州)의 2개 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용
읍루(挹婁) 지역에는 정리부(定理府)와 안변부(安邊府)를 설치했다. 읍루는 우루말갈(虞婁靺鞨)의 우루(虞婁)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위치에 대해서는 러시아연해주의 아메리카만수찬강[중국 지명은 소성강(蘇城江)] 유역설, 올리가만(灣) 부근설,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우수리강[중국 지명은 오소리강(烏蘇里江)] 유역설 등 세 가지 설이 있으나, 대략 연해주 일대가 정리부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변천
발해의 지방 제도는 요(遼)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요사(遼史)』 지리지에 의하면, “정리부(定理府)는 옛 읍루국의 땅에 있으며, 지금의 흥경(興京)[현 요령성(遼寧省) 무순시(撫順市) 신빈현(新賓縣)] 경내에 있다”고 하여 발해의 정리부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